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울림 Oct 22. 2023

오이 싫어하는 사람, 김치 싫어하는 사람

3. 사회인과 김치 (2)

어릴 적의 난 내가 김치를 못 먹는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 그리고 숨겨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생각보다 살아가는데,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상관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나마 괜찮지만.

2N 년을 통틀어 가장 큰 약점은 한국 사람인 내가 김치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항상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게 일생일대의 문제인 것처럼 먼지 만 한 문제도 지구만 한 문제로 보곤 했다. 그러니 10대 때는, 모든 생각이 나의 약점 김치로 귀결됐다.


“넌 음식을 좋아하니까, 영양사 하면 어울리겠다.”

“아니, 내가 김치를 못 먹는데. 무슨 식품영양학과야. 영양사 못 해.”

이런 진로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김치를 못 먹어서 헤어지면 어떡하지. (남자친구도 없었는데, 무슨 걱정을 이렇게 했는지 의문이다.)

사회생활 할 때, 직장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동료들이 내가 김치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하지? (다들 서로 밥 먹기도 바쁘다.)


이런 쓸데없는 고민들도 많이 했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 닥치면 어떻게든 해결 날 일들이었는데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어 인턴을 하게 된 적이 있다. 무릇 사회인이라면 알겠지만, 구내식당에서 알아서 배식해 주는 점심만큼 편한 것이 없다.

점심시간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금세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인턴을 하던 곳은 구내식당도 있었고, 간식이 넘치고, 커피 머신까지 있는 멋진 탕비실을 갖춘 곳이었는데. 나중에 꼭 구내식당과 탕비실 좋은 곳으로 취직해야지,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곳이었다.


10 20대를 거치며 친밀하지 않은 사람과 급식을 자율 배식으로 먹을 , 그릇에  김치를 담았다. 어른이 돼서 김치를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아니다. 여전히 생김치는  먹는다. 그저,  급식판을 보고 김치를 먹지 못하느냐는 지적을 듣는  피하고 싶어서였다.

내겐 익숙한 것이 타인에겐 지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간 여실히 배워온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도, 일부러 조금씩은 김치를 담곤 했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다른 분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달은 적이 있다.  이후에는 잔반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상 먹지도 않는 김치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분은 내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 안 먹는구나-.'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간 내가 겪어온 지적이 무색하게도, 생각보다 이곳의 사람들은 타인의 식습관에 무디기도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인턴 동기가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친구였다. 그 친구는 키도 크고, 예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갖고 있는 친구였는데. 한 가지 특이점은 오이를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함께 식사를 할 때, 오이를 싫어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오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거리낌 없었다. 물론, 내가 김치를 안 먹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러다 어느 , 모두  함께 회식을  적이 있었다. 숯불 갈빗집에서 회식을 했는데, 후식으로 상사분께서 냉면을 시켜주셨다. 그때  친구는 식당 직원 분께 오이를 빼달라고 부탁드렸고, 그러자 옆에 계시던 다른 선배님도 본인도 오이를 싫어한다며 오이를 빼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모습이 신기하고 와닿았던  같다.


난 못 먹는 음식에 대해 저렇게 쉽게 말해 본 적이 없는데, 저 친구는 그걸 말할 수가 있구나.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보다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음식의 종류 차이일까. 그래도, 잘 못 먹는 음식에 대해 말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그날은 내가 못 먹는 음식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달리할 수 있는 날이었다.

무언가를  먹는다고 해서, 그게  약점이 되질 않을  있구나.


그냥 내 마음과 태도를 좀 더 당당히 해도 되겠구나, 그리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이전 07화 김치를 못 먹어? 외국인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