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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2. 2023

 김치를 못 먹어? 외국인이야?

3. 사회인과 김치 (1)

원래 지나가면 다 눈곱처럼 작은 일로 여겨지곤 하지만, 당장 닥쳤을 땐 큰일처럼 여겨진다.

특히나 나는 문제에 대해 확대경처럼 비추면서 혼자 심각하게 미리미리 걱정하는 성격이었다. 다 지나고 보면 별게 아닐 때도 있는데 말이다.


일례로, 이전에 학부 재학 시절 중 한 학기에 회계관련 과목 3개에서 트리플 씨플 학점을 획득한 적이 있다. 안 그래도 회계쪽에 약했는데, 수강신청 실패로 영어로 듣는 전공 심화 회계를 듣기도 했고, 세무회계도 한 꺼번에 듣는 처지가 되었었다.


그때의 난 꼬박꼬박 도서관에 나가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것 같은데. 타고난 수포자 머리탓인지, 단순암기에 강한 이해력 낮은 타입이었는지 결국엔 트리플 씨플로 그 학기를 마무리했다.


기대를 안 하기는 했다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선택과 집중이 다 틀렸는지, 그런 결과를 받았다. 괜스레 슬픈 마음에 혼자 동네의 언덕에 올라가서 울먹거리며 친한 친구한테 전화했던 기억이 난다(지금 돌이켜 보면,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친구하고 돌이켜 웃긴 얘기로 회상하곤 한다.)




지금은 볶음 김치라던지, 샐러드라던지, 나물이라던지 어느 정도 먹지만. 여전히 난 생김치를 먹지 못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가 성장하는 내내 하나의 걸림돌이었으며, 나의 약점이었다.


마법소녀가 자신의 마법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난 내가 김치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항상 숨기고 싶었다. (마법소녀는 힘을 숨긴 짱 쎈 사람이었지만, 난 편식을 숨긴 사람이었다는 점이 다른가?)


특히 초면인 사람들에겐 숨기고 싶었다.


내겐 오래된 대학교 친구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과 8학기를 동고동락하며 보냈다. 학식도 먹고, 대학로에서 밥도 사먹고, 술도 먹고.

그러다 알게 된 지 2년인가, 3년 만에 밥을 먹다가 문득 어떤 일이 있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난 처음으로 '김밍 아웃'을 했다. 생김치를 먹지 못한다고.

그땐 친구들의 놀랐던 얼굴이 떠오른다. '왜 못 먹어?'라기 보단, '진짜? 몰랐네?'라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게,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크게 티나게 편식을 한 적은 없었다. 곱창을 못 먹는 것도 아니었고, 회를 못 먹는 것도 아니었고, 샤브샤브를 못 먹는 것도 아니었고, 김치 볶음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젠 고작해야, 학식에서 김치를 밑반찬으로 안 먹는 것 뿐이었다.


어릴적엔 야채라면 일단 거부하고 봤지만, 크면서 아예 야채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크면서 취향이 바뀐 것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에는 양파가 맛있었고, 양배추가 맛있었고, 구운 마늘이 맛있었다. 회도 아예 안 먹어서, 초밥 조차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그리고, 특히 마늘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마늘이 기초가 되는 알리오올리오라는 오일 파스타가 너무 맛있었다.


이처럼 크면서 식습관, 취향이 바뀌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고수를 먹지 못하듯, 난 생김치 특유의 향과 맛을 싫어했다. 이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거였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신경조차 쓰지 않을 문제로 난 항상 약점처럼 숨기면서 산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마트에서 판촉행사 아르바이트를  때였다. 보통 오후의 시간대에 와서, 저녁까지 그곳에서 먹게 되는데. 보통 마트의 직원 휴게실 안에는 따로 구내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마트 직원분들이 식사를 하시는데, 판촉일을 하시는 엄마 또래의 이모님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챙겨주려는 마음이 큰데, 구내식당에 급식 반찬이 부실하게 나오는 날이면. 직원분들은 집에서 반찬을 싸오셔서 함께 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또래의 친구와 먹기도 하고 때론 혼자서 먹기도 했는데.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구내식당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곳에서 저녁을 먹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집의 김치가 잘 익었다고 맛있다고 하시며 다른 분들과 나누어 드시다가. 내가 눈에 밟히셨는지, 김치를 나눠주려고 하셨다.

“전 괜찮아요. 저 김치를 안 먹어서요.”

그리 거절을 했는데.

“김치를 못 먹어? 외국인이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분께선 딱히 나를 비꼬려거나, 비방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는 보통 김치를 전통음식처럼 먹는 게 당연해서, 그래서 신기함 반 의아함 반을 담아 별 생각 없이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나중에 직장에 가서도 이렇게 한 소릴 들으려나. 또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미 초중고를 거쳐 한국인의 김치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적응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억울해지기도 했다. 채식주의자한테 고기를 왜 안 먹느냐고, 한국인 아니냐고. 그리 말하는 사람도 없고. 향신료인 고수, 마라를 못 먹는 사람한테 왜 못 먹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혼자만의 생각이고. 당연히 입 밖에 내진 못했다.

웬만하면 못 먹는 음식은 숨겨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인턴을 시작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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