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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2. 2023

나 빵점 맞았어! 빵 사줘!

번외. 주 6일제 부모님의 육아

원래 정부의 제도에 가장 빠르게 영향을 받는 것은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학교가 제일 빠른 듯하다.  지금이야 주 5일이 보편화된 지 오래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만 하더라도,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한 달 중, 번갈아가며 일주일은 토요일 등교. 일주일은 토요일 휴무였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주 6일을 모두 일하는 맞벌이셨는데. 으레 토요일은 보통 오전 근무만 하거나, 2-3시쯤 일찍 끝났다. 추가 근무나 야근을 할 때도 있지만,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어떻게 일요일이면, 우릴 데리고 주말 장도 보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셨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서, 우릴 데리고 놀러 다니셨던 걸까.



나는 뷔페를 좋아했고, 부모님은 주말이면 결혼식을 가는 날이 꽤 많았다. 이럴 때 보통 많이 쫓아다녔는데, 어느 날은 금요일 저녁에 외식을 갔는데. 엄마가 그러는 거다.


"오늘 상추를 안 먹으면, 내일 결혼식에 안 데려갈 거야. 상추 두 장은 먹는 거야."


지금이야 고기만 있다면 상추는 없어서 못 먹는다. 하지만 어릴 적의 난 상추를 싫어했다.(그냥 전반전으로 모든 야채를 싫어하긴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어떻게 했을까?

결혼식 뷔페를 먹으러 가고는 싶었는지, 상추에서 가운데 줄기를 떼고 옆에 이파리들만 먹었다. 그땐 상추 줄기의 아삭함이 정말 싫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주말의 결혼식의 쫓아갔던 기억이 난다.


매번 어떻게든 야채를 골라 먹는 날 교육시켜 보겠다고, 이처럼 뷔페 식사를 유인하기도 하고. 김치 몇 조각을 먹으면 좋아하는 텐텐 같은 영양제를 사준다고 회유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 안팎으로 피로한 하루들이었을 텐데 어떻게 답이 없던 나의 편식을 고쳐주려고 노력했을까.

그땐 야채를 먹이려는 엄마가 미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대단하기 그지없는 부모님이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받아쓰기 노트를 들고 다닌다. 스프링으로 된 받아쓰기 교재가 있었는데, 한 학기인가? 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단계를 높여서 책을 바꿔가며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보고 틀린 문장은 여러 번 써오곤 했는데.

난 항상 6-80점을 맞곤 했다. 엄마는 내가 가져온 점수를 보며, 언니 때완 다르게 엄마가 맞벌이를 하면서 유치원 때 한글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 그렇다고 속상해하셨었다. (언니는 항상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오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엄마가 그러는 거다.


"받아쓰기 백점을 받아오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줄게. 그리고, 빵점을 받으면 오예스를 한 상자 사줄게!"라고, 묘하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왜 그때 빵점에도 상품을 걸었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기 위해 100점을 맞아올 생각을 할 줄 알았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0점을 받아왔다.... 그리고 더 당당하게 그 종이를 들고 가서.


"나 빵점 맞았어! 빵 사줘!"


이랬었던 것이다. 엄마는 완전히 안전빵을 택해 아예 빵점을 맞아온 내가 어이가 없었고, 웃겼지만 약속은 지켰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난 어떤 유년기를 보낸 걸까. 가끔 생각하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100%의 확률에 건 나는 오히려 똑똑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엄만 빵점 맞아왔다고 자랑하면서 빵 사달라는 딸내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만 그저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100점의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아닌, 선택과 집중의 성과물인 빵점을 들고 빵 사달라고 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고.

왜냐면 이런 방법을 언니에게 썼을 땐, 90점 맞던 언니가 100점을 맞아오곤 했었으니까.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이토록 자식들은 별개의 개체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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