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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당이
Jun 21. 2022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등산기
혹은 저질체력 인증기
도대체 사람들은 등산을 왜 하는가.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건데 왜 힘들여 꾸역꾸역 정상에 올라야 하는 것인가.
정상에 올랐을 때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남들 다 하는 봉우리 찍기, 나도 한번 해내고 싶었다.
속리산 문장대에 3번 오르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이 있다며
세 번째로 문장대에 오르며 나의 건강을 빌어준 그에 대한 고마움도 물론 한 몫했다.
절대로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페이스를 다 잡았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걸었고, 남들이 보면 장난치나 싶을 정도로 자주 쉬었다.
어디쯤 왔는지 물을 때면 '거의 다 왔다.'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에 정말 이를 악물고 산을 올랐다.
물론 '거의 다 왔다'는건 정말 '거의 다 가기 전'까지는 거짓말이었지만.
아슬아슬한 철계단을 지나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는 바람이 매우 시원했고, 풍경이 너무 멋져서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검색 한방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장대의 사진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했다.
하지만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이나 '해냈다!' 하는 성취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아, 또 언제 내려가나'했다.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이 등산의 클라이맥스는 하산에 있었다.
저질체력을 인증하듯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무릎이 욱신거렸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이제라도 119를 부르면 헬기를 띄워주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오르막 계단이 나타나면 좌절했고, 내리막길에선 내 무릎을 지킬 길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나를 둘러업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 눈에 들어오는 등산로의 아기자기한 꽃들과 울창한 숲 속의 나무가지들 사이로 길게 뻗은 햇빛.
이대로 잠들어버리거나 기절해버리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무슨 히말라야 가마꾼도 아닌데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꽤 무거운 여자를 둘러업고 내려가는 그가 안쓰러워 내려달라 하고 다시 걸을 때면 또 조금은 걸을만했다.
같이 쉬고, 또 같이 걷고, 또 같이 쉬고 또 같이 걷는 그 여정이 인생 같았다.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순간이 아닌,
산에 오르고, 또 내려오면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등산의 진수라 느꼈다.
혼자라면 절대 못했을 등산을 내가 해냈고,
혼자라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등산을 해냈을 그가 내 페이스에 맞춰 등산을 했다.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들의 연속도 가끔은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함께 한다면 그래도 걸을 만할 거다. 그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면.
하지만 다음 여정은 꼭 속리산 문장대가 아니어도 되는 거겠지..
함께 걷기만 하면 되잖아...........
아직도 욱신거리는 내 다리를 주무르며 등산이라 쓰고 저질체력 인증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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