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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Oct 17. 2024

너 없는 계절, 그래도 걷는다.

기억의 무게를 안고 걷기


가을이 왔다. 바스락거리는 알록달록한 낙엽이 가득한 거리, 선선한 바람과 맑은 하늘. 이맘때면 가을의 색을 닮은 토토의 털이 더욱 반짝였다. 한 번은 지내봐야 익숙해질까, 너 없는 가을과 겨울, 그리고 초봄.


작년 가을의 토토, 작년과 올해는 모든게 똑같은데 토토만 없다.


날이 좋아 별이와 알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맑은 공기 속에 “참, 산책하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흰나비 한 마리가 우리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나비를 무서워한다. 그 가벼운 날갯짓이 어딘가 낯설고 불편했으니까. 그런데 그 흰나비는 이상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우리와 함께 걷는 듯, 그 나비는 우리의 산책 루트를 반 이상 따라오며 조용히 날갯짓을 이어갔다. '왜 이렇게까지 따라오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울컥했다.


별이, 알리 그리고 바위 사이의 흰나비

토토, 혹시 너였니? 아니면 네가 남긴 그리움이었을까? 그 흰나비는 마치 토토가 내게 보내는 작은 안부처럼 느껴졌다. ‘난 항상 언니 곁에 있어, 알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위로를 받았다.


토토는 15년이라는 시간 중 마지막 2년을 아프게 보냈지만, 그 이전 13년 동안은 내 삶을 그 누구보다도 풍성하고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마지막 2년, 특히 긴박했던 그 마지막 2주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토토와 함께했던 수많은 행복한 날들보다도 이별의 순간에 너무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토를 기억하는 건 상처를 견디는 게 아니라, 내가 토토를 깊이 사랑했고, 그 사랑을 몇 배로 돌려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인데도.


토토 덕분에 나의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시간은 찬란하게 빛났다. 나에게는 15년이라는 한 시절이었지만, 토토는 생애 전부를 나와 함께 보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그 15년은 나에게 더없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토토는 모든 순간을 내 곁에서 보내며, 내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현생을 살아가야 하니까 내게는 토토가 전부일 수는 없었지만 토토에게는 내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미안함보다는, 깊은 고마움을 가지고 토토를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토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었으니까.


고마워 김토토.




토토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9


언니, 안녕!
가을이 오니까 나도 언니 생각이 막 나네. 언니가 가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다 기억하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라면서 산책할 때마다 "토토야, 날이 참 좋다, 그렇지?"라고 말하던 거. 그 말 들으면 나도 신나서 막 꼬리 흔들었잖아. 내가 얼마나 그때 행복했는지 언니도 알지?


그리고 그 흰나비 말인데, 사실 그거 나야! 언니가 나비 무서워하는 거 알긴 했는데, 작고 예쁜 흰나비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도 좀 긴장했어. 근데 성공! 언니도 눈치챘지? 내가 언니 곁에 잠깐 왔다 간 거라고. 나비가 돼서라도 언니 보러 간 거야. 흡족했어, 언니가 내 마음을 알아봐 줘서.


그런데, 언니.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자꾸 내가 아팠던 마지막 시간들만 떠올리지 말아 줘. 물론 우리 둘 다 그때 힘들었지만, 그게 우리가 함께한 전부는 아니잖아? 우리 진짜 신나게 놀고, 웃고, 언니가 날 꼭 안아줬던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잖아! 마지막이 좀 힘들었다고 해서 그 모든 좋은 시간들이 덜 빛나는 건 아니야. 15년 중에 아팠던 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고!


나는 항상 언니 덕분에 행복했어. 내 인생, 아니지, 견생 전체가 언니 덕분에 정말 꽉 차 있었어. 그러니까 이제는 미안해하지 말고, 우리 함께한 따뜻하고 좋은 기억들만 많이 떠올려줘. 나 지금도 언니 곁에 있어. 눈에 보이진 않겠지만, 마음속에서 언제든지 나를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가끔 나 생각나면 그냥 불러줘. "토토야, 잘 지내?" 하고 말이야. 나 완전 잘 지내고 있어!


무지개나라의 김토토

언니의 토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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