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목을 세게 조르는 듯해서 숨이 안 쉬어지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거의 반사적으로 샤워기 앞으로 뛰어갔다.
숨이 안 쉬어져서 노력해서 쉬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잘 안 되어서 딱 죽을 것 같은데
이대로 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공포스러움보다는 '그래, 이제 그만 가도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생각 같아서
미루고 미루던 정신의학과에 다녀왔고
뇌파검사를 포함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곤
우울증과 공황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내게 '이 상태로 어떻게 일을 해요?' '퇴사하시고 정신건강 먼저 챙기시죠?'라고 했다.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릴...
처음 받아 온 약은 부작용이 심했다.
온몸의 근육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하루종일 메슥거려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새로 받아온 약은 다행히 잘 맞는다.
잠도 잘 자고, 확실히 화가 덜 난다.
분노로 길길이 날뛸 일이 없으니 사는 게 좀 낫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맘 같지 않은 상황들,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은 나의 성향,
다 알지만 모르는 척해야만 하는 반복되는 일들,
대범한 척 하지만 나는 이렇게 결국 풍파에 찌들어버렸구나 싶어 좀 서러웠다.
토토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어린 강아지가 이리저리 뛰며 토토를 보고 까불며 짖었다. 견생 15년 토토가 한참을 그냥 그 녀석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큰 소리로 앙칼지게 왕! 짖자 그 강아지는 깨갱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토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게 꼬리 치며 다가왔다.
토토도 하는 걸 나는 못하고 살았다.
그치 토토야. 화가 나면 화를 내야지.
잘한다 내 새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왜 화를 참아서 약까지 먹는 상황이 오게 됐을까를.
나는 아빠랑 참 많이 닮았다. 우리는
미친 듯 다혈질이고 끔찍하게 예민하고 잦은 분노에 시달린다. 그거 정말 안 닮고 싶었는데 빼박이다.
유전자 아주 그냥 노올랍다.
아빠는 아주 자주 화를 '냈고' 그게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화가 가라앉으면 곧 잘 사과하셨으나 이미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회복되기 쉽지 않았다. 상대방을 크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 나도 그거 잘할 수 있다. 그런 잔인하고 파괴적인 성향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화를 밖으로 내지 않으려 노력하다가 병이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