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스승
논어가 좋은 것은 알지만 막상 논어를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막막합니다. 이 두꺼운 논어를 먼저 다 읽어야 할 것만 같아요. 이 모든 내용을 먼저 이해하고 모두 알고 있어야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논어를 다 읽을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저 하루에 20분씩 아이와 함께 읽어나가면 됩니다.
논어를 읽고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요? 아이와 함께 논어를 읽는 어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역할은 바로 ‘무지한 스승’입니다.
1800년대 정치적인 상황으로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자코토는 네덜란드 학생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었어요. 자코토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이 기묘한 상황에서 자코토는 <텔레마코스의 모험>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을 통해 학생들이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 실험을 기반으로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알지 못하는 스승이고, 어떤 앎도 전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앎의 원인이 되는 스승이라고 했어요. 즉, 무지한 스승은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적절한 교수 방법도 알지 못함에도 학습자에게 훌륭한 학습이 일어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자코토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누구나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배우는 것이 가치 있다고 학생들의 의지를 각성시킨 것이에요. 무지한 스승의 역할은 기존 지식의 전수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다음은 아이들과 팔일편 4를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훌륭한 질문이다! 예에는 예식이 사치스러운 것보다 차라리 검소한 편이 낫고, 상례는 평정심을 지키며 척척 해내는 것보다 차라리 깊이 슬퍼하는 편이 낫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어떤 말인지 물었어요. 어려운 말이 많아서 그런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해요. 이럴 땐 하나씩 차근차근 질문을 하며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근본이 무엇인지부터 물었어요.
"기본이요" "시작점이요" "밑바탕이요" "뿌리요"
예식에서 사치스러운 것보다 검소한 것이 왜 예의 근본이 되는지 물었어요.
"사치를 부리게 되면 예를 지키지 않고 거만해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검소하게 되면 차분해 보여서 예를 지키는 것 같아요"
결혼식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물었어요. 아이들은 당연히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라고 답합니다. 결혼식에서 너무 사치스럽고 보여주기에 급급하면 주인공은 누가 되는지 물었어요. ‘아~’ 하면서 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어서 상례에서는 일을 척척 해내는 것보다 깊이 슬퍼하는 것이 왜 예의 근본이 되는지 물었어요.
"장례식에서는 슬피 우는 것이 돌아가신 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오늘의 이야기를 토대로 ‘예의 근본’이란 무엇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때와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의 근본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핵심을 잘 파악했다고 말해주었어요. 나도 선생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테니 여러분도 교실 속에서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어요. 한 아이는 “오늘 배우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논어를 가르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논어라는 고전을 아이들 스스로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논어를 읽고 이를 해석하는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되 무심하게 관심과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괜찮은 해석을 못 한다고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하여 텍스트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훌륭하게 해석하는 것에 감탄하고 배움의 즐거움을 함께 즐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