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을 랜덤재생 1
학교 가려면 정희네 앞마당을 통해서 가는 길과 작은집으로 가는 길이 있다. 사촌 언니랑 사이가 좋을 때는 작은 집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윤희 할아버지네 마당 끝자락에서부터 기다랗고 컴컴한 돈사를 지나야 작은 집이 나온다. 돈사 맞은편에는 빈집도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는 지난밤 엄마 등 뒤에서 실눈 뜨고 보았던 ‘전설의 고향’이 생각났다. 양쪽 가방끈을 꼭 쥐고 ‘무섭지 않아’ 주문을 외우고 옆은 절대 쳐다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담장 안으로 작은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쟁반에 하얀 대접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 옆 축사가 보이고 작은 아빠가 젖을 짜고 난 뒤 오전 일을 마무리하기에 분주했다.
대문을 들어가면 마루 위 방 두 개가 나란히 있고 사촌 언니 방을 향해 “언니 학교 가자”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 동시 옆 방문이 열리고 동갑내기 사촌이 나왔다. 방안에서의 온기와 한약 냄새가 밀려왔다. 작은 집 식구들은 철만 되면 한약을 먹고 영양제를 달고 살았다. 동갑내기 사촌은 나보다 키도 컸고 덩치도 좋았는데 작은 엄마는 허약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동갑내기 사촌은 나보다 삼일 먼저 태어났고 둘도 없는 친구다. 명절날 친척들이 모이면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고 나를 설득시키지만 난 한 번도 오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동갑내기 사촌도 나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동갑내기 사촌이 언제나 같은 팀이라고 생각했다. 나한테 뭐라고 안 하니.
하루종일 머릿속에 ‘나도 한약 먹어 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동갑내기 사촌을 부러워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발걸음이 무겁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집안 가득 퍼지는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 “뭐지? 내 마음을 엄마가 안 건가!” 무거웠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한약, 내 것이라고 확신하며 들뜬 마음으로 집 안 구석구석 엄마를 찾아 뛰어다녔다.
“엄마, 엄마 지금 끓이는 한약 그거 누구 거야? 내 거야!”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약쑥’이라고 했다.
나와 한 살 터울인 사촌 언니는 예쁜 원피스와 새로운 핀이 많았다. 한 해가 지나 작다고 물려준 옷은 나와 동생이 입었다. 마르고 닳도록 바지만 입고 다녔던 나는 물려받은 분홍 원피스와 함께 받은 흰 타이즈를 입고 슬쩍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바지만 입고 놀던 나는 조신하게 걸어도 보고 앉을 때도 다리를 붙여 보고 양손으로 치마를 잡고 빙그르르 돌며 예쁜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은 언니와 나는 한편이 되고 사촌 언니와 말다툼이 벌어졌다. 지금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사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작은 언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지 마”하며 바닥에 선을 긋고 선뜻 나서지 못한 나는 뒤에서 거들뿐이었다. 사촌 언니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오히려 차분하고 당당한 말투로 “그동안 내가 줬던 옷 다 내놔” 담벼락에 기댄 나는 속상하고 화도 났다. 몸을 앞으로 내밀며 우물쭈물 표정을 짓고 야속한 작은 언니의 한마디 “그래 가져가 더럽고 치사하다”
목장을 하는 작은 집은 파란 갤러퍼 자동차가 있다. 겨울, 눈이 발목까지 차도 동생과 나는 버스로 학교를 가야 했다. 동갑내기 사촌과 사촌 언니는 작은 아빠 목장일이 끝나는 시간에 학교까지 춥지 않게 가기도 했다. 시간이 맞으면 간혹 태워주시기도 했지만 일부러 태워준 적은 없어서 굳이 타고 가지 않았다.
여름방학이면 갤러퍼에 작은 집 식구들과 함께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을 데려가 줬다. 수영복은 없었다. 입고 간 옷 그대로 바닷물에 들어가 파도와 모래범벅으로 놀았다. 화장실에서 여벌옷으로 갈아입는 정도로 정리를 하고 끈적거리는 몸으로 모래만 털고 갤러퍼 뒷좌석에 사촌 형제들과 뒤엉켜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다도 처음이었고 바닷물이 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동갑내기 사촌이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세상 신기한 마이마이 카세트 플레이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걸어 다니며 노래를 듣는 것이 무척 신기했고 동갑내기 사촌이 부러웠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성탄절 전날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교회 다니던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나는 6학년 때까지 양말을 걸어두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선물이 담겨있지 않았다. 나에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산타 따위는 더 이상 믿지 않으리라.
나에게 의미 없는 크리스마스가 또 지난 어느 여름날.
“해수야, 이거 니 거다” 회색 마이마이 카세트 플레이어와 이어폰을 내 손에 들려준 작은 엄마다. 크리스마스도 지났고 생일은 가을인데 생각지 못한 선물이다. 부러움 속에 받은 마이마이 들린 내 손과 얼굴은 빨개졌고 당황스러웠다. 꿈같았고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새것. 카세트에는 피아노 연주곡이 담겨 있었고 부끄러워 표현 못한 작은 엄마의 마음도 담겨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톱니바퀴 동그라미 두 개가 나란히 돈다.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감기는 모습에 빠져 있으면 이어폰으로 연주곡이 들렸다. 마음에 드는 곡을 들으려면 다시 되감기를 해서 듣거나 끝까지 다 듣고 들을 수 있었다. 매번 비교되는 환경에 부러웠던 사촌, 우리 집을 원망하던 길고 긴 여름날은 피아노 연주곡으로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