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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마중 Oct 18. 2024

‘이런 오픈런’이라면 여름 방학숙제로 강추

노는 게 제일 좋아

매미소리가 요란스러운 여름방학이다. 숙제가 많다. 생활 계획표 짜기, 방학 생활 그림 그리기, 만들기, 책 읽기, 매일 일기 쓰기, EBS 보고 탐구생활 완성하기. ‘마음먹으면 일주일 정도 다 할 수 있겠지’ EBS 탐구생활을 펼쳐 놓고 하루, 이틀은 정해진 시간에 방송 보고 문제 풀이를 했다. 첫날 일기도 10줄 넘게 썼다. 방학 숙제 시작이 좋았고 뿌듯한 마음에 놀았다. 쭈욱.   

  

아침부터 무척 덥다. 사촌들과 우르르 냇가에 갔다. 동갑내기 사촌은 대나무 그물을 물줄기가 좁은 곳을 찾아 양팔을 벌려 단단히 잡고 있었다. 허벅지까지 바지를 접어 올린 나와 사촌 동생은 풀숲 깊숙이 발을 집어넣고 처벅처벅 고기를 쫓는다. 우리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모두들 기대 찬 표정과 몸짓으로 맡은 역할을 신중히 했다. 그물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물망 사이로 물이 떨어지고 초록색 풀 사이로 조그만 송사리가 파닥이며 빛에 반짝거렸다. 모래를 파서 만든 물웅덩이에 고기를 가둬두고 동생은 물고기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보초를 섰다. 놀이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 그물을 다시 뒤집어 찌꺼기를 빼내고 물고기 잡기를 하며 모래와 자갈 쌓기를 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장소는 언제나 우리의 놀이터. 행동 대장 사촌 동생을 따라 개울과 논 사이에 연결해 놓은 콘크리트관을 따라 들어가 뜨거웠던 등과 정수리도 식히고 허리 굽혀 왕복 달리기를 하고 동글 탐험대처럼 소리도 질렀다.     


엄마가 타 논 미숫가루에 얼음을 넣고 한 대접 마시면 배가 차는 느낌 현우 할머니네 밤나무 아래 약속이라도 한 듯 모였다. 바닥에 커다란 동그라미 그려놓고 땅따먹기를 하고 있을 때 사촌 동생이 밤나무에서 뛰어내릴 수 있냐고 거들먹거렸다. “그것도 못하냐”하며 나는 제일 먼저 올라갔다. 나무 타기는 나무껍질과 두께 등 특징을 알고 손과 발 스텝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게중심. 아빠 무등 탔을 때의 높이니 식은 죽 먹기다. 두 발로만 착지까지 완벽했다. 작은언니 차례다. 올라가는 자세가 자연스럽지 않다. 나무에 매달리려던 언니는 그대로 뒤로 떨어졌다. 두 팔과 동시에 엉덩이,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닿았다. 밭에서 일하는 엄마는 헐레벌떡 뛰어와 읍내 병원에 데리고 갔다. 단둘이.    

  

뼈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한 작은 언니 표정이 밝다. 딱딱한 ‘ㄴ자’ 한쪽 팔을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이 로봇 같았다. 엄마는 그날로 세수며 밥 먹는 것을 도와주었다. 엄마와 한 몸이 된 작은 언니는 우릴 보며 히죽 웃었고 그런 언니가 얄밉기도 했지만 나는 부러웠다.     


참외 밭에서 입으로 껍질을 벗기며 한입 베어 물고 있는 아빠에게 나도 달라고 했다. 아빠는 샛노랗고 예쁜 참외를 정성스럽게 찾아 “참외 배꼽이 이렇게 볼록 나온 게 맛있어” 나도 아빠처럼 이로 껍질을 벗기고 먹었다. 여름을 담고 있는 참외는 솜사탕보다 더 달고 맛있다. 양동이 가득 참외와 토마토를 수돗물을 틀어 놓은 빨간 대야에 던져 넣고 동생과 영수네로 뛰어갔다.       


동갑내기 사촌과 사촌 동생은 오토바이를 자연스럽게 배워 작은 집 일손을 도왔다. 새참을 가져다주거나 필요한 농기구를 빌리러 다닐 때는 그보다 빠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동갑내기 사촌이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사촌 동생, 내 동생까지 태웠다. 정원 초과였다. 다들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출발했고 나는 사촌 언니 빨간 자전거를 빌려 타고 오토바이를 쫓아갔다. 돌아오는 길, 번뜩하는 호기심에 자전거를 오토바이에 묶자고 했다. 자전거 보조 의자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 오토바이 뒷자리 손잡이에 단단히 묶었다. 오토바이 속도를 천천히 내면서 거리를 체크했다. 수신호를 보내며 동갑내기 사촌은 속도를 냈다. 페달을 밟지 않고 신나게 끌려가듯 자전거 타기는 스릴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씩 오토바이 백미러로 뒤를 살피며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길 급격한 커브길을 그대로 통과했다. 빨간 자전거도 그대로 통과하는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브레이크를 살짝 잡았다. 지구와 달이 충돌하지 않으려는 중력에 법칙처럼 자전거 그대로 뻗어 나가고 나도 슬라이딩을 했다.      

오토바이는 멈췄고 셋은 동시에 뒤를 쳐다보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일어나는 나는 자전거 바퀴만 신나게 돌아가는 것이 야속했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 모르겠다. 절뚝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빨갛게 까진 무릎과 정강이에 빨간약을 발라주었다. 다행히 깁스는 하지 않았다.     


저녁 먹은 지 한참이 지났다. 할머니를 따라 우리 자매는 마당에 나왔다. 덤불쑥을 잔뜩 모아 모기향과 함께 불을 피우면 쑥 향이 마당과 집 안 가득 퍼졌다. 연기를 따라 하늘로 올라 달토끼도 만날 것 같았고 깊은 여름 밤하늘을 덮어 주었다. 엄마가 방금 쪄 내온 옥수수를 평상에 내려놓으면 서로 먹기 좋은 빛깔과 모양의 옥수수를 골라 먹는다. 간혹 잘못 찾아온 모기는 부채에 찌그러지기도 했다.      

찌그러지는 것은 모기만이 아니었다. 개학이 코앞이다. 숙제를 해야겠다는 다짐은 내일로, 내일로 미루게 되어 결국 개학 전날이다. 다급해진 나는 울며불며 숙제를 했다. 일기와 그림 그리기, 탐구생활.     

겨울 방학이다. 어김없이 EBS 탐구생활을 펼쳐놓고 제일 먼저 방학 시간표를 아주 근사하게 만들었다. 책 보기도 무려 한 시간이나 있고 공부 시간도 넣었다. 이번엔 생활계획표가 있고 하루에 하나씩은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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