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입추가 지났다. 살갗에 닿는 찬바람이 미세하게 느껴진다. 풀벌레가 하나둘 울기 시작하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 집안 가득 열기와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 차가 없다. 덥다. 선풍기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는 무료감속에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를 끌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형부, 저 자전거 좀 빌려주세요” 인근에 사는 큰 형부에게 빨간 자전거를 빌렸다. 야구모자를 힘껏 눌러쓰고 반바지에 발목까지 오는 양말을 최대한 잡아당겨 신고 출발.
왼쪽 볼에 닿는 아침볕이 무척 뜨겁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바람이 내 양 볼을 스치고 통 큰 티셔츠는 한들거리는 살랑거리는 느낌이 사랑스럽다. 초록색 벼 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가지런한 전신주 사이사이 새들이 앉아 ‘어떤 벼 이삭을 골라 먹을지’ 분주하게 재잘거린다.
마을 농로를 따라 버스가 다니는 큰길,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피해 마을 농로길로 우회했다. 구불구불한 길, 오르막과 내리막길, 울퉁불퉁한 길, 여러 갈래의 길이 각양각색이다. 길에 맞게 내 엉덩이와 허벅지, 두 발은 맞춤형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갈 때는 엉덩이를 들고 언덕을 오를 때는 엉덩이도 들고 허벅지에 힘을 바짝 주고 무릎과 발을 굴린다. 올라가면 내리막이 있고 갈래갈래 여러 길을 선택해서 간다. 으스스한 숲이 나오면 페달을 빨리 밟고 화창한 숲이 나오면 크게 호흡하며 천천히 간다.
어느새 마을에서 벗어나 중학교가 있는 읍내다. 마트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두 개의 읍내를 더 지나 홍성 외곽의 작은 마을, 고등학교 단짝 친구집에 도착했다.
“00야” 자전거에서 내리는 내 목소리에서 뿌듯함과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문을 열고 단정한 옷차림의 친구는 “뭐야! 여기까지 자전거로 온 거야?” 친구의 놀래는 모습에 덩달아 나 자신이 더 대견스럽기도 했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시원한 보리차 한잔을 마시고 앞으로의 무계획을 이야기하고 또다시 출발했다.
등 뒤, 친구의 든든한 응원처럼 정수리 가득 내려쬐는 볕이 매우 강렬했다. 홍성종합운장동을 지나 신나게 내리막을 내달리는 나는 몸도 마음도 한결 시원했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마음속에 조금의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면 아마 그 순간 다 씻겨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구불구불 수덕사 길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토할 만큼 반복한다. 매미 소리도 나무 소리도 잠잠하고 들리는 것은 나의 심장 박동 소리와 헐떡임. 간혹 달려가는 차를 피해야 했고 그럴 때 이곳은 절대 쉴 곳이 아니라고 정신 차리고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주변에 어떤 무엇도 나의 자전거 페달을 밟아 밀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입 마름과 허벅지의 터질 듯한 경계에서 나의 한계와 인내를 만들어 가고 내 안에 어떤 무언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또 하나 양말선을 따라 하얗고 까맣게 탄 살.
2013년 봄, 7살 큰 아이 마음에도 무언가를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다.
“아들, 우리 자전거 타고 외할머니집까지 갈까?” 아들이 싫다고 했어도 나는 잘 구슬려서 데리고 갔을 것이다. 엄마가 자전거 타자고 하니 아들은 흔쾌히 “좋아” 대답했다. 간식을 챙겨 우리만의 자전거 하이킹을 시작했다. 단 신랑과 시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다. 분명 잔소리 들을 게 뻔했다.
평소처럼 동네에서 타는 모양새로 조금씩 집 근처를 벗어났다. 집은 보이지 않고 외할머니집으로 향하는 자전거 페달이 사뿐했다. 설레는 마음속 신랑의 반응과 큰 찻길의 위험성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등에 업힌 15개월 된 작은 아이.
여러 생각이 교차했지만 이미 마을에서 벗어났고 큰 아이와 함께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00이 자전거가 나갑니다” 흥얼거리며 등 뒤에 작은 아이는 발장구를 친다. 엄마와 자전거를 타니 마냥 신이 난 큰 아이는 풀도 툭툭 건드려 보고 앞으로 성큼성큼 나간다. 달그락달그락 하늘색 자전거, 바구니가 달린 빨간색 자전거가 앞 서거니 뒤 서거니 장난스럽게 달리며 여유가 느껴진다. 등에 매달리듯 앉아 있는 작은 아이 무게감도 느낄 수 없었다.
염려하던 큰 길이 코앞이다. 큰 아이에게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했다. 두 자전거는 다리 위에 멈춰 섰고 바구니에서 간식을 꺼내 주었다. 감자 과자를 맛있게 먹으며 마냥 싱글벙글한 큰 아이. 작은 아이도 내려주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내 마음의 걱정스러운 마음하나 빼고.
큰 아이는 어떤 길로 가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평온했다. 나는 지나온 길의 즐거움을 다 잊고 다시 큰길을 벗어나야 하는 방법과 대안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업는 띠를 단단히 채운다. 찰칵.
“여기서부터는 큰길이고 차가 많이 다녀. 엄마 잘 따라와야 해.”
두 고비의 고개를 넘겨야 했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구불거리는 언덕길과 내리막길을 따라 차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절대 차선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고 넘어져서는 더더욱 안된다. 그리고 쭉 뻗은 직선 길을 지나면 된다. 온 감각과 신체는 두 아이와 갑자기 튀어나올 차에 집중이 되었다.
눈과 고개는 큰 아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차가 갑자기 나타나는지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앞도 보고, 귀는 자동차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지 앞에서 오는 차인지 큰 아이 자전거 소리는 잘 따라오는지 확인한다. 순간 고비는 다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이걸 왜 하고 있는지 후회가 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나만 믿고 따라오는 큰 아이를 데리고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등에 업힌 작은 아이는. 별 상상을 하며 그 짧은 순간 후회하는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순간 후회했던 감정들은 다른 감정들로 바뀌고 마음이 놓였다. 마을 길을 탔다.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큰 아이에게는 “너는 대단해. 최고야”하며 특급 칭찬을 해주고 작은 아이에게는 고마움을 느꼈다. 나에게는?
친정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놀란 엄마는 작은 아이를 안아줬다. 우리는 뿌듯(어쩜 나만)했다.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신랑에게 자랑하듯 전화를 했다.
“오빠 우리 자전거 타고 엄마네 왔어 오긴 왔는데 갈 수가 없어서 데리러 와줘” 당연하다는 듯한 나의 목소리에 신랑은 어이없음과 약간에 화남의 어디쯤에서 “알았어”하고 전화를 끊는다. 곧 신랑은 시아버지 트럭을 끌고 왔다.
어떤 표정도 없던 신랑의 반응에 약간에 서운함과 두 대의 자전거가 트럭 짐칸에 누워있는 채 차 안은 정적이 흐른다. 어색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노력하는 나의 말소리에 역시나 다시는 이런 위험한 거 하지 말라는 신랑의 한마디.
내가 진정 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