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작은 아이 태권도 심사를 보러 가던 중 스치듯 지나가는 드넓은 농장의 푸르름과 벚나무의 모습에서 잠시 마음이 그곳에 멈췄다.
"저기가 어디야?"
"저기 서산농장이잖어. 일부를 개방해서 산책도 할 수 있다는데 다음에 한번 가 볼래?"
라고 먼저 제안을 하는 신랑이다.
"그러게 김밥 싸서 소풍 가면 좋겠네"
이제는 신랑이 '어디 가자'라고 말하면 크게 기대가 되거나 설레지 않는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면 서운해하겠지만 신랑은 여행에 있어서도 계획적이다. 그런 신랑과는 다르게 나는 여행에 있어서는 즉흥적이다. 그러다 보니 즉흥적으로 떠나본 적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즉흥적으로 다녀올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큰 나로서는 계획적인 여행은 짐싸는 일만 기억난다.
소풍을 잊고 지내던 일주일이 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토요일이다. 비가 오니 자연스럽게 소풍은 사라졌다. 일요일 아침이다. 볕이 좋다. 하늘도 파랗다. 신랑이 분주하다. 그러나 소풍 가는 분위기는 아니다!
"어디가?"
"해진이 형님 만나고 올게!"
"해진이 형님이 누구야?"
영화를 보고 온다는 신랑이다. 언제부터 유해진 배우가 신랑 형님이 되었는지 기분 좋게 나가려는 신랑이 얄미우면서도 들뜬 모습에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12시면 끝나니깐 나갈 거면 준비해!" 그럴 줄 알았다.
10시다. 두 시간정도 시간이 남는데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다시 창밖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나에게 손짓한다. 서둘러 나에게 오라고~
'뭐 소풍은 안 가도 큰 아이도 왔겠다 김밥이라도 싸놓지 뭐!' 하는 생각에 밥을 안치고 서둘러 동네마트에 들러 김밥 재료를 샀다. 이내 김밥을 여러 줄을 말아 도시락에 정성스레 담았다. 이불속에 누워있는 큰 아이, 작은 아이를 깨웠다.
"김밥 먹으러 나가자~"
입만 잠에서 깬 큰 아이는 리포트를 해야 해서 집에서 먹겠다고 하고 작은 아이 반응은 중간이다. 안 간다는 말을 하기 전에 "김밥은 컵라면이랑 먹어야 제 맛이지! 아빠 올 때 컵라면 사 오라고 카톡 해줘?"
작은 아이는 타이밍이다. 컵라면이 살렸다. "김밥은 컵라면이지!" 하며 작은 아이가 중간이었던 마음이 넘어왔다.
12시가 되자 신랑이 도착했고 준비해 둔 도시락을 챙겨 차를 탔다.
"어디로 갈지 생각했어?"라는 신랑의 말에 '신랑도 생각을 안 했구나!'
"가까운 곳으로 가서 먹고 오지 뭐!" 하면서 나는 머릿속에 이왕이면 근사한 곳이 어디 있을까 하며 아는 장소를 머릿속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이 또한 타이밍이어서 여기서 미적거리면 결국 서로 기분만 상해서 결국 선택한 장소는 아파트에서 조금 떨어진 인근 공터다. 걸어서 가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곳이다.
저 앞에 우리 아파트가 내려다 보이고 바람도 시원하고 한적해서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캠핑의자를 꺼내고 준비해 간 김밥과 과일,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셋은 기분이 좋았다. 이런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작은 아이에게 산책을 하자고 이야기하니 옆에서 신랑은 "그래 아빠는 화장실 가고 싶으니깐 1품 심사본 네가 엄마 지켜줘!"라는 말에 작은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흔쾌히 "그래!" 하며 의기양양 미소 짓는다.
가까운 곳에 작은 산이 있다. 이곳은 경사가 완만하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 주변 지인들이 괜찮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다.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밝은 기운이 느껴졌고 도심 속에 작은 산임에도 다양한 새들이 지저귄다. 새소리를 들으며 작은 아이의 지킴을 받으며 상쾌하게 걷는다. 가는 길 칡넝쿨이 눈에 띈다.
"엄마 어렸을 때는 이런 거 캐서 먹고 그랬었어!" 하며 넝쿨을 잡아당겼다. 넝쿨은 끊임없이 나왔고 줄기가 어찌나 질긴지 끊기지 않는다. 작은 아이의 도움을 받아 넝쿨 마른부분을 한 올 한 올 풀어서 한가닥씩 끊었다. 커다란 하나의 일을 해결하려면 힘든 것처럼 하나의 넝쿨은 단단하고 단단하여 끊기지 않았다.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서 해결하는 모양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 같아서 한 올 한 올 끊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넝쿨을 이용하여 기차를 만들어 작은 아이와 나는 넝쿨 기차에 탔다. 유치하지만 잘 따라해주는 작은 아이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정돈하든 자리를 바꾸며 걷는 속도에 맞춰 내가 앞으로 나선다. 한 줄안에 둘은 함께 걸어가며 넝쿨을 잡아당기듯 앞서가는 내 힘에 작은 아이는 "엄마 앞에서 끌어주니 하나도 안 힘드네"하며 즐거워한다.
"엄마 어렸을 때는 다 이렇게 놀았어!" 하며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었다. "진짜 어릴 때 이렇게 놀았어!" 하며 어떤 의미에서인지 무척 놀래면서도 흥미로워하는 작은 아이다.
넝쿨을 나무와 나무사이에 연결하여 그네를 만들고 싶었지만 넝쿨이 길이가 짧아서 두 팔로 매달려 타는 그네를 만들었다. "잘 봐봐" 나는 넝쿨에 매달려 앞으로 왔다 갔다 그네를 탔다. 팔과 손바닥에 피가 터질 듯 아팠지만 정말 오랜만에 동심에서 노는 기분이라 아이보다 더 신이 났다. 작은 아이도 도전을 했다.
"옛날사람들은 이렇게 놀아서 손 악력이 좋구나!" 하며 엄마의 놀이와 엄마의 악력을 인정해 준다.
두 시간을 산에서 놀았다. 솔잎길을 걷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터널처럼 지나고 청설모를 만나고 새소리를 들으며 작은 아이와 나를 연결하는 넝쿨을 허리에 걸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