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초입에서 몇 걸음 걸으니 솔향이 짙다. 평소 일상 숨쉬기와 달리 숨을 아주 크게 더 깊게 숲향을 가득 마신다. 지난번 작은 아이와 왔던 산이지만 오늘은 혼자다. 봄이 되면서 겨울 동안 게을리했던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갈까 말까 망설임은 있었지만 막상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날씨와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가 기분을 즐겁게 한다. 평소 좋아하는 뉴발 운동화를 신고 '무기모토 산포는 오늘이 좋아' 주인공처럼 발랄하게 걷는다. 노랫소리에 팔을 흔들기도 하며 발로 점프를 하고 싶지만 마음은 참으라고 한다.
비 온 다음날과 구름이 낀 하늘이어서 그런지 나무들마다 짙은 물감을 묻혀 놓은 듯 숲은 어둡다. 나무기둥은 까마귀처럼 까맣다. 걸어왔던 차도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가 멀어지고 숲 속에 나만 있다. 작은 아이와 왔을 때는 걷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오늘은 사람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갑자기 지난번 보았던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쭈뼛은 아니지만 예민해진다. 위에서 아래에서 뭔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력이 이럴 때 발휘된다. 이런! 솔향은 잊혀지고 나의 걷기 운동은 감각운동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냥 돌아갈까', '왔는데 뭐가 무섭다고 조금만 더 가자' 마음과 마음사이에서 내 발은 멈추지 않고 계속 숲 안으로 들어간다. '제발 누구라도 걸어와라'라는 마음으로 걷는다. 저 멀리 나무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안심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또 한 번 그리고 잠시 의심의 마음으로 나에게 가까워지는 사람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 힐끔거리며 편안하게 걷는 척한다. 안전하게 나와 스친다. 안심이다. 편안하다. 사람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은 걱정 없이 걷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걷는다.
그렇게 산을 중간에서 턴을 하여 돌아오는 길에 어리석은 불편한 나의 마음에 의문점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겁이 많아졌을까? 20대 때는 혼자서 며칠씩 여행도 다니고 밤이고 낮이고 산이며 바다 마음 내키는 데로 다녔던 난데 말이다.
겁이 많아진다는 건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안전하게 지내고 싶다. 그렇게 어두웠던 산에서 내려와 환한 길에 익숙한 장소에서는 다시 노래가 들리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다시 발랄하고 힘차게 걷는다.
마음 한편에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겁쟁이! 아무 일도 없었잖아!'
나는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 익숙한 음식이 더 편해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섭다고 두렵다고 하고 싶은 걸 멈추지는 않는다.
'그게 행복일지도'라는 이야기를 일기처럼 써가면서 나는 일상에서 만나지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과 나와 족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정말 그게 행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행복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앞으로 만나질 모든 것들을 열렬히 사랑하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