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다.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설레는 아침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차분한 날은 바깥놀이 하기 참 좋다. 볕이 들면 더 좋다. 출근해서 어린이집 앞마당을 쓴다. 마당을 쓴다는 것은 손길과 발길도 바지런한 마음을 불러내고 '춥다, 춥다' 허공에 뿜 내는 뽀얀 입김이 찬공기에 닿아 아침햇살 오선지에 춤을 춘다. 좋다!
'이런 날은 이불썰매 말고 진짜 썰매를 타도 좋겠다' 생각하던 중 경비실 앞도 분주하다. 여기저기 제설작업에 경비아저씨 손에 펄렁거리는 하얀 뭔가가 보인다. '비닐포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손에 들고 계신 비닐포대 안 쓰시는 거면 제가 좀 써도 될까요?"
'뭣하러 이걸 가져가'하는 표정으로 선뜻 내어주신다.
안에 넣을 재료는 없지만 미끄럼 최강인 포대를 준비해 두고 드디어 아이들과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나왔다.
아이들도 나도 눈을 보자마자 호들갑스럽게 신나서 뛰어간다. 평소 후발대 초록이지만 빛에 속도로 눈을 잡아 날린다. 내게!
던지는 것보다 날아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 힘은 약하나 초록이의 표정과 몸짓만큼은 기절각이다.
"아~"하며 아픈 목소리로 휘청거리는 내 모습은 서비스다. 그 몸짓에 재미있다고 집중 공격하는 초록이다. 재미있다. 너도 즐겁다.
비장의 포대썰매에 관심을 보이며 이제 포대썰매를 탈 타임이다. 끈이 있어야 함을 짐작했지만 급한 대로 끈 없이 아이들을 밀어주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지도 않은 아이들 그래야 왕복 4미터를 허리와 고개를 바싹 숙여 몇 차례 오가며 차오르는 숨, 등짝에 맺힐듯 말듯 한 열기, 허리의 통증, 아이들 웃음 소리에 한번씩 더 태워줄까하는 갈등속에서 숨을 돌리는 순간, 아이들은 포대 안에 눈을 담는다. 또 하나의 놀이가 시작이고 다행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는 언제나 자연스러운 시선의 이동이다.
또 볕 따라 눈을 밟아 보자!몇 걸음 걷다 보니 초록잎 겨울나무 위에 눈 뭉텅이가 그대로다. 잘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 세운다.
"얘들아, 여기 나무 아래 눈이 온데!" 놀이의 발견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나도 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순순히 모인다. 제각각 걸음걸이로 하나 둘, 나무아래로 그리로 주변에 다 모였다.
이때다! 있는 힘껏 나무를 흔들었다.
"흔들어 흔들어 흔들어"
눈과 작은 겨울나뭇잎들이 함께 사아악 떨어진다. 아이들 머리로, 아이들 몸으로, 아이들 마음으로
아이들 반응이 좋다.
"또, 또!"
남아 있던 눈들이 모조리 떨어지고 초록잎만 그대로다. 더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은 순간, 아이들은 다른 나무를 찾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눈도 밟아보고 산토끼가 되어 깡충거려 보고 눈 위에 누워도 본다.
겨울을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 더 배워가는 시간이다.
놀이는 점심이라는 시간에 끝을 내야 하고 언제나처럼 어린이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 배꼽시계도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다.
앞장서던 달님이가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어디 가는 거지?' 기다려준다.
달님이는 나무를 찾는다. 좀 전에 초록 나무를 지나 그 곁에 나무 곁에 선다. 나를 부른다.
내 발걸음이 잠시 망설여진다. 나무는 굵고 아주 아주 단단하고 그리고 지난가을 가지치기를 한 묵직한 나무, 그 아래 나를 기다리는 달님이를 보며 미소가 번진다.
추신:
"달님아 눈은 왜 하얀 거야?"
"으응, 눈사람 만들어야지" 그래서 하얀거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