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고, 마음이 무너지고, 그래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올해 1월, 나는 18년을 다닌 회사를 떠났다.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잘 안 났다.
떠나고 나서야 느껴졌다.
“이제 정말, 나 혼자다.”
그 이후로 약 세 달 동안, 나는 무너졌다.
정신과에 가고, 약도 먹고,
운동도 못 하고, 그냥 몸과 마음이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새로 입사한 곳이 지금 다니고 있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회사다.
이제 겨우 3일 출근했을 뿐인데
온몸에 혼란이 퍼졌다.
생각보다 다르다.
너무 다르다.
그전 회사는 일이 많아도 내 일만 하면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조직이고,
그래서 더 전체를 알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기술영업팀장이라는 타이틀이지만,
실은 팀원이 없는 1인 부서.
그리고 그만큼 내가 뭘 얼마나 알아야 할지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게다가 기숙사 생활은 상상보다 더 어렵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같은 공간에 제니와 윤호가 없다는 것
그걸 매일 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게 참 많이 버겁다.
어제는 눈물이 났다.
사실 예전 회사 다닐 때도
평일엔 늦게 퇴근하고, 아이 얼굴 못 보고,
잠만 자는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 집 안에 있었다.
숨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은,
정말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정했다.
한 달 동안은 일주일 중 3일은 기숙사에서,
2~3일은 퇴근하고 집에 가기로.
왕복 150킬로미터지만,
내 가족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가는 거니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그건 결국 가족이고, 사랑이고, 따뜻한 저녁이니까.
[에필로그]
오늘은 러닝머신 위에서 10킬로를 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5킬로쯤 지나니 숨도 차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사실 여기서 멈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표를 정한 건 나였고,
그걸 지키는 것도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한 발, 또 한 발.
나머지 5킬로를 뛰기로 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회사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는 혼자 러닝머신 위에 올라 한 시간을 걷고 있다.
왜냐면,
어차피 금요일 저녁 고속도로는 막히니까.
일찍 출발해도 늦게 도착하는 건 똑같다.
그 시간에 답답하게 앉아 있느니,
그냥 나답게, 내 페이스대로, 땀을 흘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한 시간을 이렇게 쓴다는 게,
나를 조금 더 사랑하는 방법이겠구나.”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무겁지만
집에 가서 가족들과 보낼 금요일 밤을 생각하니 설렌다
어쩌면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냥 당연했던 시간들.
그냥 흘러갔던 저녁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까
더 소중하고, 더 따뜻하고, 더 간절하다.
오늘은 늦더라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간다.
그게 내가 하루를 견딘 이유고,
지금 이 러닝머신 위에서 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