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준비한 창업비는 진짜가 아니다.
식당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식당이나 해볼까?>라고 제목을 지은 건 내가 그랬듯 사람들이 식당을 여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식당 창업과 관련하여 얘기하는 손님들의 대화를 들어도 그렇다.
-이까짓 회사 때려치우지 뭐.
-회사 때려치우면 뭐 할 건데?
-나? 뭐라도 못하겠냐? 안 되면 이런 식당 하나 하지 뭐.
-음식도 못하면서 네가 무슨 식당이야?
-음식 할 줄 알아야만 식당 하냐? 주방장 잘하는 사람 쓰면 되고 프랜차이즈 하면 재료 다 오니까 그냥 데우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런데 내가 하면 이렇게는 안 하지. 인테리어 깔끔하게 해서 직원 교육 친절하게 시켜서 제대로 하지. 이렇게 구멍가게는 쉽지 않지.
-식당 별거 있냐? 맛있고 깨끗하고 친절하면 손님 몰리는 거지.
음식을 할 줄 알아야 식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방장을 잘 구해서 식당을 운영하면 잘 된다는 것도 프랜차이즈는 조리법이 쉬워 조금만 익히면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걸 식당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업종을 바꿔보면 어떨까? 대화가 달라진다.
-이까짓 회사 때려치우지 뭐.
-회사 때려치우면 뭐 하게. 자본은 있고?
-그러게 일단 돈이 문제긴 한데 투자를 잘 받긴 해야 돼.
-투자는 쉽냐? 사무실도 얻어야 하지. 거래처는 처음부터 너 일 준데? 직원들 월급에 4대 보험에.... 퇴직금 몇 달이면 끝날 걸!
-그렇겠지? 아휴. 별 수 있어? 일단 더러워도 월급쟁이 해야겠다.
식당을 여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업은 누구나 쉽게 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식당도 엄연한 사업이다. 사람들은 왜 식당은 쉬울 거라 생각하는가!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번화가가 아니면 권리금 없이 시설이 돼 있는 곳을 들어갈 수도 있으니 보증금만으로 내 장사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게다가 보증금은 다시 돌려받는 돈이다.
둘째, 마진이 많이 남는 것 같다.
삼겹살 집을 가면 150g 1인분에 16,000원이다. 세일을 할 때면 마트에서 삼겹살 한 근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1인분 가격으로 4인분을 만들 수 있다. 대충 계산해도 많이 남는다.
셋째,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한다.
음식을 하는 것을 좋아하니 사람들에게 대접할 일이 많다. 사람들이 좋아할 메뉴도 꼼꼼하게 레시피로 남겨두는 편이다. 사람들에게 음식 해주는 것을 좋아하니 이왕이면 돈을 받고 음식을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사람들이 쉽게 하는 생각이라고 전제했지만 고백하자면 내가 식당을 열기 전에 했던 생각이다. 5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저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첫째,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생각보다는 계획보다 지출되는 금액이 많이 발생한다. 권리금이 없는 곳은 그만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식당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가게를 알아보게 되면 결국은 권리금이 있는 곳에 관심이 가게 돼있다. 권리금이 없는 곳은 식당 창업의 경험이 많은 사람, 즉 팬층이 확보 돼 있고 조금 먼 곳이라도 기꺼이 찾아오는 매력이 확실한 공간이 아니라면 월세만큼도 벌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골목에 있는 20평 미만의 가게 있다고 치자. 식당을 했던 곳이라 주방시설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보증금 3,000만 원
권리금 2,500만 원
월세 220만 원
계약을 하려면 5,500만 원이 필요하다. 식당 준비금으로 1억이 준비 돼 있다. 가게를 계약하고도 4,500만 원이 남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충분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식당 인테리어 비용
나름의 콘셉트로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면 평당 150~200만 원. 20평 기준 3,000~4,000만 원. 인테리어만으로 남은 돈이 대부분 소진된다. 만약에 인테리어 경험이 있어 목수 한 분과 함께 일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 1,000만 원은 비용으로 들어가고 전문가가 아니니 인테리어 시간은 늘어난다. 인테리어 비용 아낀다고 공사의 시일을 늘리느냐, 공사를 최대한 빠르게 끝내서 영업을 시작해 영업이익을 얻느냐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다.
식당 셋업 비용
에어컨을 설치하고, 포스를 설치하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정수기를 설치하고, CCTV를 설치하고, 세스코 관리를 신청하고, 술을 채워 놓고 재료를 채워 놓는 비용. 장사를 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예비 비용
식당을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지인들에게 할 도리를 나름 하고 살았더라면 첫 달은 매출이 반짝 오를지도 모른다. 오픈 특수가 지난 시기부터가 진짜 장사의 시작이다. 주변 손님들이 그곳에 식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6개월 정도가 걸린다. 6개월을 잘 버텨야 한다. 식당 창업에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써버리고 나면 3개월째부터 버티기가 힘들어진다. 6개월 분의 월세, 3개월 분의 직원 월급 정도의 예비비는 통장에 있어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식당을 운영할 수 있다. 준비된 창업 비용을 가게를 오픈하는데 모두 쓰고 영업을 시작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부터 고민하게 될 것이다.
둘째, 마진이 많이 남는 것 같다?
A가 고기를 먹으러 갔다. 삼겹살 집을 갔더니 150g 1인분에 16,000원이다. 세일을 할 때면 마트에서 삼겹살 한 근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1인분 가격으로 4인분을 만들 수 있다. 대충 계산해도 많이 남는다. 역시 고깃집이 많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식당을 연다면 고깃집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신선한 고기 받아서 집게와 가위를 주면 알아서 먹으니 얼마나 편한가!!
위의 계산에선 빠진 것이 너무 많지만 기본적으로 반찬 비용이 빠졌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야채가격이 많이 올랐다. 얼마든지 손님에게 내줄 수 있는 반찬류가 이제는 모두 운영비용으로 책정된다. 원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백반집이 없어지는 이유다. 반찬이 중요한 백밥집의 주재료가 폭등하고 나니 마진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일은 많은 데 남는 것이 없다.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 수순이다.
장사를 직접 하기 전엔 주재료의 원가만 생각한다. 부재료의 가격 따윈 관심 밖이다. 그래서 쉽게 착각한다. 식당 운영 비용은 모든 비용의 총합이다. 주재료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셋째,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럴 것이다. 진짜로 음식을 잘할 것이다. 좋은 재료를 써서 오랜 시간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면 당연히 맛있다. 그러나 식당은 다르다. 음식이 맛있는 건 기본이고 조리시간이 짧고 쉬워야 한다. 내가 맛있는 음식보다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러니까 음식을 잘하는 사람에게 식당이나 해보라는 말은 어쩌면 칭찬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말은 이제 고생 좀 해보라는 말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건 고귀한 일이다.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해결해 주는 일이니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식당을 하는 것은 다르다. 중세 귀족들이 펜싱을 취미로 하는 것과 전쟁에 직접 나가는 것만큼 다른 일이다.
부탁하건대, 사람들이 음식을 잘한다는 칭찬에, 그리고 식당을 열면 매일 가겠다는 허언에 속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