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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해볼까

#밭에 씨를 뿌리듯

by 조명찬

식당을 열자마자 나는 바로 손님이 몰릴 거라 생각했다. 내가 준비한 메뉴는 맛있고 특별하니까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고 금방 입소문이 퍼질 것이라 생각했다. 메뉴 레시피를 꼼꼼하게 만들어서 직원들을 고용할 것이고 직원들이 늘어나게 되면 2호점을 빠르게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식했으니 용감했다. 새로 오픈한 식당에 손님이 들어와서 주문을 한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몰랐던 때였다. 게다가 가게 앞에 요란하게 화환을 놓는 것도 싫어서 친구들의 화환을 다 거절했으니 손님들 입장에서는 이곳이 원래 있었던 곳인지 새로 생긴 곳인지 헛갈렸을 것이다.


무엇을 주로 파는지 알 수 없는 식당간판만으로도 사람을 끌 수 있다는 자신감은 순도 100%'무식과 오만'이었다. 오픈을 하고 일주일 동안 당연히 손님이 없었다.

재료를 준비하고 버리고, 준비하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인스타 계정에 메뉴 사진을 몇 장 올려놓고 그것만으로 마치 모든 준비를 다 한 것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주변 직장인들이 하나, 둘 호기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 식당이 있었네.


-그러게 원래도 식당이긴 했었는데 바뀌었네.


-언제 바뀌었데? 하도 많이 바뀌니까. 뭘 파는지도 모르겠어.


식당에 들어온 손님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지나가도 식당이 새로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는 것.

손님들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주 가는 길 밖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길 위에서도 자주 가는 곳 외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새로 식당이 생긴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어떻게 해서든 시선을 끄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밭에 씨를 뿌리듯, 천천히 매출을 올리는 식당을 하고 싶었다. sns에 꾸준히 홍보를 하면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그건 생각에 불과하다. 막상 손님이 없고 준비해 둔 재료를 버리다 보니 금세 지쳐가고 있었다. 식당은 시작하자마자 당장 매출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재료가 회전이 되고 순매출이 보장된다. 많은 식당의 사장님들이 문 앞에 화환을 놓고 메뉴를 크게 써 놓는 건 그들의 감각이 올드해서가 아니다.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메뉴 사진을 새로 찍고 밖에서도 전체 메뉴를 볼 수 있는 작은 메뉴판을 제작해 입구에 두었다. 점심메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크게 볼 수 있게 창문에 크게 걸어 두었다. 그랬더니 매일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메뉴 촬영


손님들의 입소문에 의해 식당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즈음,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스타,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저희만 믿고 맡겨주시면 가게 앞에 손님들 줄 세워드립니다.


-사장님은 음식만 신경 쓰시면 되고요. 홍보는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나는 홍보업체의 모든 전화를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정중하게 거절한 이유는 그들 중에 한 명은 통화를 끊고 나서 악의를 품고 식당에 악플을 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은 꼭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선플을 쉽게 남기는 사람들인데 악플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홍보없체가 식당에게는 거대 권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이용하면 식당의 홍보에 도움이 됐겠지만 무엇보다 '홍보'가 '맛'보다 중요하다는 홍보업체의 일괄적인 설명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나의 경우, 규모가 작아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려와도 많이 받을 수 없었다. 저녁타임에는 술을 판매하니 회전이 느리고 점심타임에는 인근의 직장인들로도 점심시간 1~2시간을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홍보업체와는 맞지 않는 매장이었다.

심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맞지 않으니 나는 혼자서 조용하게 선언했다. 매장을 닫을 때까지 홍보업체를 이용하지 않을 것을.....


홍보업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손님의 회전이 빠른 식당, 한 번에 손님을 앉힐 수 있는 좌석이 40석 이상 되는 식당은 적극적으로 홍보업체를 이용해 볼만하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고려해봐야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식당을 하는 나는 매일같이 줄이 서 있다가 망하는 식당을 숱하게 목격했다. 홍보업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때는 사람들이 몰리고 그렇지 않은 때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줄 서는 식당이라고 무조건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노포 사장님들이 방송출연을 거부하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 어떤 식으로도 홍보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도 시스템이 없다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홍보야 말로 밭에 씨를 뿌리듯 해야 두터운 단골층이 형성된다. 나는 손님들의 리뷰를 주기적으로 꼼꼼하게 읽어보며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그들의 언어는 진짜니까.


얼마 전 신혼 때 잠시 살았던 동네를 아내와 걸은 적이 있다. 역 주변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는데 다행히 그때 종종 가던 '소금구이'집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무척 반가웠다.


인사를 주고받는 손님들 중에 멀리 이사를 갔는데도 굳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식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반가운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식당이 없어져도 '그때 그곳 꽤 맛있었어'라고 한 번쯤은 얘기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참 영광이겠다. 누군가의 인생에 그렇게 기억되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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