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위로-김치찌개
장사를 시작한 후 가장 자주 보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함께 장사를 하는 사장님들이다. 처음에는 서먹하게 지냈지만 매일같이 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눈인사를 하게 되고 눈인사를 하면서 몇 달을 지내다가 말을 섞고 말을 섞다 보니 술도 한잔 마시게 되고 술도 한잔 마시다 보니 결국 여행까지 함께 가게 되고....
이 정도면 한동안 보지 못해 데면데면한 친구보다 훨씬 친한 사이다. 게다가 우리는 자영업자들에겐 지옥 같았던 코로나시즌을 함께 겪으며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
특별한 예고 없이 가게가 닫힌 걸 보면 걱정이 돼서 자연스럽게 안부의 문자를 보내는 사이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모두 다른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 골목 안에 있는 동료다.
가끔 이상하도록 한주가 조용할 때가 있다. 사람이 없으면 골목은 가게 문이 일찍 닫히며 평소보다 빠르게 컴컴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슬슬 김치찌개를 한솥 끓일 준비를 한다. 시고 달고 얼큰한 국물로 동료들을 위로할 준비를 한다.
거래처 정육점 사장님에게 특별히 부탁한 찌개용 돼지고기를 넉넉하게 사고 육수용 멸치도 산다. 육수용 멸치를 약불에 살살 저어가며 덖어낸 후 물을 부어 육수를 만든다. 그래야 비린맛이 덜하고 구수한 육수맛이 살아난다. 육수가 준비 됐으니 가장 커다란 웍을 꺼내 뜨겁게 달군 후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돌려가며 굽는다. 돼지기름이 웍 바닥에 모아지며 지글지글 끓어오를 때, 미리 만들어두었던 멸치육수와 김치를 함께 넣고 불을 높인다. 찌개가 폭발할 것처럼 폭폭 소리를 내내 끓어오를 때 불을 중불로 줄이고 양파와 대파를 넣고 한번 더 끓여내기만 하면 김치찌개 완성.
찌개가 완성이 되면 우리가 함께 속해 있는 단체톡방에 문자를 보낸다.
-김치찌개 완성. 시간 될 때 한 그릇씩 가져가세요.
가끔씩 함께 먹을 때도 있지만 나는 나눠 주는 편을 선호한다. 함께 먹으며 왁자지껄한 위로보다는 혼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편안함의 위로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외로운 싸움이다.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고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물론 회사도 그렇다고 반문할 수 있지만 회사는 함께 고민할 동료가 있다. 하지만 자영업은 동료가 없다. 그래서 외롭다.
외롭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쩌면 그건 자영업의 숙명이다. 그러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식사시간을 한참 지난 후에야 혼밥을 하고 자정이 넘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갈 데가 없어 집에서 혼술을 하고....
혼밥, 혼술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덧 그게 익숙해지고 그게 편해진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장님들의 혼밥, 혼술을 존중한다. 그래서 음식을 넉넉하게 해서 함께 먹자고 하지 않고 나눠 먹는 것이다.
김치찌개는 좋은 고기와 육수만 잘 쓰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눔에 있어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지 않는다. 찌개를 나눠 주면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기운 좀 내려고 끓였는데 생각나서 더 끓였어요. 이거 한 번에 먹기 많을 테니 다음 날에는 물 더 넣어서 스팸 좀 넣고 라면 수프 조금 넣은 다음에 라면 사리 넣어서 끓여 먹어요. 그러면 부대찌개로 한 끼 더 먹을 수 있어요.
-오늘 밤에는 소주 한잔 먹고 푹 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잘 먹을 게요.
내가 끓인 위로의 김치찌개를 조심스레 들고 가는 주변 사장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의 오늘밤을 상상한다. 소주 한잔에 김치찌개 한 수저. 그거면 꽤 괜찮은 위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