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버릴 수 없는 것 - 콩장샐러드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엄마는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든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은 아예 면회가 되지 않으니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매일같이 챙겨주던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지 못하니 엄마는 일상을 잃어버렸다. 하루에 한 끼 정도만 겨우 챙겨 먹었고 그것도 라면이나 끓어먹기 일쑤였다. 냉장칸에 쟁여두었던 재료는 시간이 지나 냉동칸으로 옮겨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냉장칸은 비어지고 냉동칸은 가득 찼다.
중환자실에 있던 아버지가 일반실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엄마는 아버지가 병원에서 간단히 드실 수 있는 음식을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엄마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빨랐다. 심심하게 물김치를 담그고,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는 콩장을 만들고 각종 장아찌를 만들었다.
엄마의 희망적인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일반실로 올라가서도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의식이 아직 없기 때문에 경관식(콧줄로 식사를 하는 방식)으로만 식사가 가능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보호자보다는 간병인을 쓰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어쩔 수 없이 간병인을 썼다. 일반실만 올라가면 아버지와 붙어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허무했다. 엄마의 시간은 다시 더뎌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왔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유튜브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전화를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통화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전화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날, 엄마는 아버지의 환자식으로 준비했던 반찬을 이동식 장바구니에 가득 싣고 연락도 없이 집으로 왔다. 김치냉장고에 들어가는 김치통으로 2통이나 됐는데 한통에는 각종 장아찌, 다른 한통에는 검은 콩장이 새까맣게 가득했다.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이걸 누가 다 먹는다고…..’
엄마는 겸연쩍어했다. 미안해했다. 그러면 이걸 다 어쩌냐는 표정이었다.
-우리 요즘 장사도 잘 안돼서 시간 많아. 집에서 밥 많이 먹어야겠네.
-맞아요. 어머니. 전화하시면 가지러 갈 텐데. 무겁게 이걸 또 다 가지고 오셨어요.
아내와 난 부담스러운 표정을 감추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김치통에 가득 찬 반찬만 봐도 소화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냉장고가 원치도 않는 저 많은 반찬들로 가득 찰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오늘 아침에는 버섯수프와 콥샐러드를 만들었다. 집에 남아 있는 토마토, 오이, 올리브 그리고 콩장을 넣은 샐러드였다. 콩장을 소진하기 위해 다양한 음식에 질리지 않게 넣어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콩장이 샐러드와 잘 어울린다. 소스는 콩장의 짠맛을 중화하기 위해 마요네즈를 활용해서 만들었는데 확실히 콩장 고유의 짠맛이 잘 잡혀 샐러드의 여러 야채와 잘 어우러져 튀지 않는다.
아직도 냉장고에 한가득 남아 있는 저 콩장을 나는 단 한 톨도 버리지 않으리라. 엄마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만든 이 반찬을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다 먹은 날, 엄마에게 다 먹었다고 잘 먹었다고 전화해야지. 설마 다 먹은 거 확인하고 더 해주시진 않겠지? 엄마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나저나 콩장은 자가 번식도 하나? 이놈의 것이 먹어도 먹어도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