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의 추억 - 오징어두루치기
첫 직장은 회사 이름은 제법 유명했지만 책이 더 이상 잘 팔리지 않아 규모가 줄고 있는 작은 출판사였다. 마포에 본사가 있고 일산에도 사무실이 있었는데 집에서 출근을 하려면 왕복 3시간이 걸렸다. 일주일에 한 번 파주에 출근하는 날은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렇게 힘겹게 출퇴근을 하고 받는 월급은 100만 원이 겨우 넘었지만 나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었다.
건축과를 졸업한 내가 출판사에 취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편집 쪽은 관련 학과 채용이 당연했기 때문에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관련 전공을 따지지 않는 영업 쪽이었는데 일단 출판사에 들어가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배우면 되는 거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거리가 멀어도 일단 취직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서점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책을 사려면 무조건 서점에 들러야 했다. 사소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서점에 들러야 했다. 서점이 정보의 바다였던 시절이었다.
출판 영업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웠다. 서점을 돌며 책을 진열해 둔 매대에 우리 출판사의 책을 얼마나 많이 진열해 두느냐가 주 업무였는데 그러려면 서점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야 했다. 새로 나온 신간을 직원들에게 소개하고 판매 상황을 체크하고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에 놓일 수 있도록 부탁을 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조금 어려웠다. 일단 당시 출판사에서 신간을 자주 내지 않았다. 신간이 자주 나와야 서점 직원과 얘기의 물꼬를 틀 수 있는데 그게 없으니 할 말이 없었다. 안 그래도 나 말고 수많은 출판사의 직원들과 얘기를 하느라 피곤해 보이는 직원들에게 특별하게 할 말도 없으면서 관계 유지를 위해 말을 건넨다는 게 쓸데없어 보였다. 그래서 매번 눈인사만 하고 돌아서곤 했다.
월말이 되면 지방에 출장을 갔다. 말이 출장이지 지방에 있는 서점을 다니며 한 달 치 판매분을 수금하러 가는 거였다. 물론 돈만 받는 것은 아니고 지방 서점의 판매동향을 살피거나 신간 판매량을 살펴보며 분위기를 보기도 하지만 그건 한 달에도 책을 수십 권 내는 대기업 출판사의 영업자들이나 하는 일이지 작은 출판사는 판매 동향을 살펴볼 게 사실 별로 없었다.
홀수달은 천안~대전~익산~군산~전주~광주에 다녀오고 짝수 달은 청주~대구~부산에 다녀왔다. 책 판매가 조금 된다 싶으면 좀 더 자주 가긴 했지만 평소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지방에 들렀다. 퇴근 후, 출판 편집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어느 정도 실무를 익혀 영업부에서 편집부로 부서를 옮기기 전까지 나는 그 출장을 3년 다녔다.
출장을 다닌 첫 해에는 각 출판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서점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얼굴들이 생겼고 명함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것이다.
지방 출장 스케줄이 잡히면 서로 일정을 맞춰 한 도시에 모여 밤이면 밤마다 술을 마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들이 그냥 농담처럼 흘리는 얘기도 공부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계속 어울리다 보면 뭐라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뭐든지 챙겨야 하는 불편한 술자리가 됐고 나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사람들하고 어울려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의미 없는 술자리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연락을 조금씩 끊으며 그들의 동선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몇 달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질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진정한 출장을 다닐 수 있었다. 혼자 다니니 서점에 더 여유 있게 머물 수 있었고 서점 관계자들과 더 오래 얘기할 수 있었으며 밤에는 온전한 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출장은 한번 가면 3,4일은 다녔는데 모텔비를 내고 나면 식사로 백반을 겨우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빠듯했다. 나는 모텔보다 사우나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때만 해도 지방 모텔은 오래된 곳이라 시설이나 청결에 문제가 있었다. 차라리 차라리 사우나 한편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편했다. 그렇게 숙박비용을 아끼면 식비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대전에 가면 늘 그 집을 갔다. 오징어두루치기에 칼국수 면 사리를 함께 주는 곳. 대전에 가면 숙소로 정하는 24시간 사우나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가는 맛집은 아니었다. 혼자 가도 언제나 자리가 있어서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게 제일 좋았다.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달에 한번 정도 오는 나를 곧 사장님이 기억해 줬고 무슨 일 하냐며 물어봐줬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도 해줬다.
-웃는 게 예뻐서 뭘 해도 잘할 거야.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사장님의 칭찬이 영 어색했지만 나는 어른들의 그런 응원이 고팠었다. 출판사는 사향 산업이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한다고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잔소리를 들을 때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칼칼한 오징어두루치기에 칼국수 면을 비벼 먹고 나면 그제서야 출장지에서의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았다. 혼술을 하는 게 어색하고 눈치 보였던 20대였지만 나는 꼭 소주 한 병을 시켜 마시곤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혼자 술을 먹고 있는 나를 사람들이 애처롭게 보는 것만 같았다. 한 병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조금 취기가 올라왔다. 평소보다 빠르게 취하는 것 같았다.
어두운 골목을 괜히 비틀거리며 걸어보기도 했다. 조금 외로웠다. 그래도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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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치기는 결국 양념장 맛인데 간장과 고추장의 비율이 중요하다. 양념장은 고추장이 간장보다 많으면 국물 맛이 텁텁해지고 고추장찌개처럼 될 수 있으니 고추장 1, 간장 2의 비율로 양념장을 만든다. 그밖에 고춧가루, 설탕, 매실청, 맛술, 후추 등은 기호대로 넣으면 될 것이고....
출판사를 관두기 몇 달 전에 그 두루치기 집을 오랜만에 찾았다. 그때는 출장 업무가 내 업무가 아니었으니 일로 간 건 아니었다. 골목은 넓어졌고 커다란 건물이 생겼다. 사우나도 없어졌고 두루치기집도 없어졌다. 아쉬워서 대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두루치기 집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평일인데도 줄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두부두루치기 작은 걸 시키고 소주 한잔을 마셨다. 분명 맛있는 것일 텐데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징어가 아니고 두부였기 때문일까?
소주 한 병을 혼자 마셔도 눈치를 보지 않는 어른이 됐는데 그날의 소주는 참 맛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