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요리 하나쯤은 남자의 기본 - 칼국수와 파스타
아버지는 칼국수를 좋아했다. 퇴근하는 아버지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 있다면 게다가 그 안에 바지락 한봉이 있다면 그날의 저녁 메뉴는 여지없이 칼국수였다. 아버지의 칼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꽤 수고로웠다. 바지락을 여러 번 씻어 소금물에 담근 후에 검은 봉지로 덮은 후 해감을 시키고 그동안 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만들었다.
하얀 밀가루에 물을 넣고 소금을 넣고 아버지의 힘을 넣으면 가루가 머지않아 매끄러운 반죽이 됐다. 둥근 공처럼 반죽이 완성되면 진갈색의 맥주병으로 넓적하게 미는 건 나와 동생의 몫이었다. 커다란 나무 도마에 밀가루를 균일하게 솔솔솔 뿌리고 동그란 반죽을 맥주병으로 밀어내면 도화지처럼 편편하고 하얀 반죽으로 변했는데 나는 그게 재미있었다.
나와 동생이 민 반죽은 편편하지 않고 울룩불룩했는데 아버지는 그걸 다시 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었다. 반면에 아버지가 민 반죽은 종이처럼 매끈했다. 나는 늘 아버지처럼 밀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반죽을 모두 펴내면, 이제 그 반죽을 3단으로 접어 썰어내면 되는데 아버지가 칼로 썰면 우린 썰어낸 면이 바로 붙지 않도록 툴툴 털어 내며 칼국수 면을 만들었다. 바지락을 듬뿍 넣고 호박과 양파 대파가 들어간 육수에 고른 면과 울퉁불퉁한 면이 함께 들어간 칼국수를 아버지는 그 무엇보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밀가루를 처음 먹었던 때를 반복적으로 얘기했다.
"6.25 전쟁 끝나고 얼마나 먹을 게 없었겠어.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까끌까끌한 죽을 먹다가 보급받은 밀가루로 국수를 처음 만들어 먹었는데 목구멍에 기름 칠한 것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거야. 그게 얼마나 끝내주던지."
사실 나와 동생은 칼국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밀가루 국수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라면이 있었다. 하지만 칼국수를 너무 좋아하는 아버지를 보는 게 어릴 적에도 좋았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즐거우면 우리도 즐거웠으니까.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칼국수를 만드는 과정에 동참하지 않았다. 내 의견이 생겼고 고집도 생겼다. 아버지가 칼국수를 먹자며 바지락을 사 와도 나는 라면 먹을 거라며 굳이 물을 따로 끓이고 따로 먹었다. 한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을 시기였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고 한 집에 있는 게 싫을 때였다. 집에서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친구들과 최대한 놀다가 들어갈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맘처럼 되지 않은 일로 술을 자주 마셨고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한 모습이 싫었다. 나도 아버지도 서로를 몹시 미워할 시기였다.
그 후, 나는 아버지와 함께 칼국수를 만든 적이 없다. 밖에서도 칼국수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 역시 그즈음부터 집에서 칼국수를 만드는 것을 멈췄던 것 같다.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의 칼국수가 생각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 여름의 군대 훈련소였다. 딱 한번 그 맛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 계속 그 맛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휴가만 나가면 당장이라도 아버지를 졸라 칼국수를 만들어 먹자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휴가를 나가자마자 그토록 먹고 싶던 아버지의 칼국수는 잊어버렸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기 바빠 아버지와는 한 끼 정도만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으로 식사를 했을 뿐, 아버지의 칼국수는 먹지 못했다. 재미있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나뿐만 아니라 나보다 2년 후에 군대에 간 동생 역시 아버지의 칼국수가 그리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나는 서른이 다 돼서야 동생에게 듣게 됐는데 우린 같은 걸 같은 장소에서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그리워했으면서도 아버지에게 칼국수 한번 만들어 먹자고 한 사실이 없다는 것도 똑같아 신기해하고 아쉬워했다.
결혼하기 전 아버지에게 종종 파스타를 해드린 적이 있다. 파스타를 먹은 아버지는 들어간 재료를 하나하나 먹어 보더니 얘기했다.
"이렇게 좋은 재료가 들어가면 맛없는 게 없겠다. "
'맛있다'라고 간단히 얘기하면 될 걸 아버지는 그렇게 칭찬은 휭 둘러서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워낙 이골이 나서 그게 더 이상 서운하지 않은 나이가 됐다. 아버지가 접시를 깨끗이 비우면 그걸로 만족했다.
아버지가 칼국수를 쉽게 하듯 나는 파스타를 쉽게 한다. 물론 나는 자식이 없어 아버지가 자식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싶었던 그 맘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었던 그 맘은 잘 알겠다. 나도 가정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당장 이번 주말이라도 가서 아버지와 이런 얘기를 나누며 파스타를 해드리고 싶지만 작년 4월에 쓰러진 아버지는 병원에서 재활을 하며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몇 주전 아버지는 쓰러진 지 9개월 만에 입으로 먹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콧줄과 뱃줄로 식사를 대신했는데 상황이 조금 좋아져서 입으로도 죽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입으로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가족에게는 기적이고 행복이다.
아내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대답은 한결같다. 내가 만든 파스타.
그럴 때면 나는 미리 삶아두었던 스파게티를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을 하고 팬에 이리저리 굴려 파스타를 완성한다. 조리 과정이 라면만큼 쉽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볶음밥만큼 쉽다고 확신한다.
스파게티를 쉽게 만들려면 미리 준비과정이 필요한데 우선 스파게티를 미리 삶아 놓는 것이다. 파스타는 삶는 시간이 국수나 라면보다는 길기 때문에 갑자기 해 먹고 싶을 때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귀찮을 때가 있는데 스파게티 한 봉을 미리 삶은 후 소분을 한 다음에 냉동을 해두면 먹고 싶을 때마다 바로 꺼내서 요리할 수 있어 간편하다.
이때, 타이머를 이용해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끓는 물에 소금 한 티스푼과 파스타를 넣고 4분 삶은 후 물을 버리고 커다란 볼에 담아 올리브유를 무치듯이 듬뿍 뿌려준 후 식혀준다. 이때 빨리 식힌다고 절대로 찬물에 면을 식히지 않고 실온에서 식혀야 하는데 면이 만졌을 때 뜨겁지 않다고 느껴질 때 즈음 소분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파는 1인분의 양이 140~160g 사이니까 무게를 달아 넣어두면 좋겠지만 정확한 양을 팔아야 하는 식당도 아니고 무게를 재는 것도 귀찮으니 밥그릇 하나에 조금 모자라게 담으면 그 정도 양이 된다.
냉동실에서 꺼낸 파스타는 전자레인지에 해동으로 2분을 돌린다. 그동안 달궈진 팬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리고 집에 있는 재료 아무거나 넣고 볶다가 레인지에서 해동된 파스타를 넣고 2분 30초 정도를 팬에서 더 굴려주면 재료의 맛이 스파게티에 알맞게 밴 파스타가 완성된다. 물론 중간중간에 물을 조금씩 넣어주며 소금간과 후추는 필수!
미리 스파게티를 삶아 놓으면 파스타를 할 때 들어가는 면수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절대로 면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면수를 넣으라는 파스타 요리법이 대중화돼서 면수를 필수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분과 염분이 있는 면수는 면과 재료를 잇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인데 파스타를 팬에서 익힐 때 약간의 버터와 소금을 추가하면 더 맛있는 접착제를 활용한 파스타가 완성된다.
조개탕이 남았다면 봉골레 파스타를 쉽게 만들 수 있고 부대찌개가 남았다면 매콤한 햄 파스타를 쉽게 만들 수 있다. 하물며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그 육수를 이용한다면 꽤 그럴듯한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파스타는 볶음밥과 같은 요리다. 재료의 맛을 밥이나 면에 잘 스며들게 하여 만드는 음식이니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칼국수를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만들었다. 평생 요리를 책임지던 엄마도 칼국수를 할 때만큼은 아버지에게 온전히 주방을 맡겼다. 나도 역시 그렇다. 파스타를 할 때만큼은 아내가 온전히 나에게 맡겨준다.
우리 집에선 남자가 면요리 하나쯤은 거뜬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비가 내린다. 오늘은 파스타보다는 칼국수가 먹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