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봄, 그리고 길을 묻는 남자
하동의 봄, 공기가 따스하게 느껴지고, 벚꽃이 흩날리며 상큼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카페에 앉아, 노트에 여행 중 겪은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그때, 내 테이블 옆에 서서 살짝 긴장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cuse me... Is this the way to Choi Champandaek?"
고개를 들어보니, 그 남자는 태닝된 피부에 강렬한 눈빛을 가진, 매력적인 남미 남자였다.
잘생긴 외모에 근육질 몸매. 한마디로 ‘그냥 진짜 잘생긴 외국인’ 그 자체.
그런 그가 쑥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Sorry, I’m a bit lost. Can you help me find it?"
길을 묻는 외국인이겠거니 했지만,
그의 살짝 머쓱한 미소에 갑자기 심장이 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 카페에서 나가서요, 저쪽으로 가면 돼요.
사실 저도 잘 모르긴 한데… 같이 가볼까요?”
그는 기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계속해서 내게 호기심을 보였고,
가끔 그 시선이 스칠 때마다 내 마음은 다시 두근거렸다.
“난 마르코라고 해요. 아르헨티나에서 왔어요.
사실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는 조심스럽게 영어로 말을 건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두 번째예요. 하동은… 뭔가 특별한 곳이에요.”
마르코는 환하게 웃었다.
“저는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좋아요. 특히… 여성분들과 얘기할 땐 왠지 더 편해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자주 하세요?”
그는 두 손을 번쩍 들며 당황한 듯 말했다.
“아뇨, 아뇨! 오해 말아요. 그냥…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좋다는 뜻이에요.”
그 순간, 괜히 꾸미지 않은 그의 얼굴이 오히려 더 솔직하게 느껴졌다.
설렘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데 진짜 궁금한데… 왜 하필 한국, 왜 하필 하동이에요?
보통 외국인들은 서울까진 오는데, 여기까지는 잘 안 오거든요?”
“처음엔 저도 서울만 가려 했어요.
근데 어떤 인스타에서 하동 강가 사진을 봤거든요.
강이 그렇게 천천히 흐르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걸 보자마자 그냥… ‘여긴 나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진짜 혼자 있고 싶어서요.”
나는 피식 웃었다.
“와, 그 감성. 인정이죠.
여기 섬진강변 진짜 예뻐요. 저도 이 풍경 엄청
좋아해요. 송림공원도 아세요? 거기 진짜 산책하기
좋아요.”
마르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 갔다 왔어요.
진짜 조용하고, 나무 냄새가 좋더라고요.”
“그럼 이제 진짜 여행자 된 거예요.
그리고 하동 왔으면… 재첩국은 꼭 드셔야 해요.
국물은 좀 어렵다 싶으면 재첩전! 바삭한 게 진짜…
어후. 최고예요.”
마르코가 웃었다.
“한국 누나들은 다 이런가요?ㅎㅎ
혹시… 재첩국 식당에서 나오신 거 아니죠? 자꾸 뭐 추천하시길래 ㅎㅎ”
“아뇨, 절대요 ㅋㅋ 그냥 지나가던 여행자 상담소장입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하동의 작은 전통주 가게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마르코는 그날 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한테 ‘강한 남자’라고 자주 말해요.
근데… 그 말이 이제는 좀 무거워요.”
나는 말없이 그의 눈빛을 바라봤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랬어요.
부모님도, 주변도 늘 ‘강해져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계속 센 척, 괜찮은 척하며 살아왔죠.”
그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근데 알고 보니… 저, 엄청 소심하고 불안한
사람이더라고요.
그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척 안 해도 돼요.
지금처럼 말해주는 게, 더 멋있어요.”
그는 나를 바라보다, 살짝 웃었다.
“당신처럼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 보면… 괜히 부끄럽고 또 용기가 나요.”
나는 막걸리 한 모금을 천천히 삼키며 말했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찾는 중인 것 같아요.
때론 아프고, 또 헷갈리지만… 결국은 그 길로 가는 거죠.”
둘 사이에 잠깐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조차 편안했다.
“이상하네요.” 마르코가 말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렇게 속 얘기하는 게.”
나는 웃었다.
“그럴 때 있어요. 처음 본 사람한테 더 쉽게 말하게 되는 거. 친구나 가족한텐 못 하면서도.”
“맞아요.
오늘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서… 진짜 고마워요.”
“저도요.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마르코.”
마르코와의 대화는 하동의 봄날처럼 따뜻했고, 그는 그날 나에게 진정한 자신을 보여준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엔 조금 덜렁거리며 나에게 다가왔지만, 결국 그와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은 그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