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상추 좀 나눠드릴까요?

by 에이프릴

충주의 작은 캠핑장에서였다. 어린이집 방학 맞춰서

가족끼리 간만에 평일 캠핑을 온 건데, 평일이라 한산할 줄 알았던 캠핑장이 의외로 북적였다. 텐트를 다 치고, 바람막이까지 설치하고 나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남편은 바로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 옆에서 상추를 씻고 있었다. 그런데… 상추가 너무 많았다. 누가 봐도 5인분은 되는 걸 내가 실수로 다 들고 온 거였다.

“아, 이거 어떡하지. 버리긴 아깝고…”

고민하던 찰나, 옆쪽에서 큰 캠핑카가 보였다.

도장도 번쩍번쩍, 저건… 진짜 캠핑 장인이다.

“저기요~ 혹시 상추 좀 필요하세요?”

나는 슬쩍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그러자 캠핑카 옆에서 누가 휙 돌아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어머, 저희요! 완전 필요했어요. 남편이 고기만 들고 와서 제가 지금 상추 안 가져왔다고 엄청 뭐라 했거든요!”

그렇게 상추를 건넸고, 자연스럽게 둘의 삼겹살이 한 테이블로 합쳐졌다. 나와 남편, 아이. 그리고 캠핑카 가족, 남편과 아내, 그리고 중고등학생 두 아이. 금방 친해졌다.

“저희는 캠핑카 타고 주말마다 전국 돌고 있어요. 캠핑장마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

아내가 밝게 말했다.

“와 부럽다… 꿈 같아요. 그렇게 다니다가 어디서 멈추고 싶어지면 그냥 주차하고 쉬세요?” 내가 물었다.

“그게 말이 멋있지요, 실제로는... 변기 비우는 게 제일 스트레스예요.”

남편이 삼겹살을 한 점 입에 넣으며 시크하게 말했다.

“그리고요,” 아내가 이어받았다,

“캠핑카가 크잖아요? 부부싸움하면 피할 데가 없어요. 문 닫고 나갈 데가 없으니까 결국 다시 마주 보고 앉아야 해요. 그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긴 해요. 억지로 화해하게 되니까요. 하하.”

그러더니 아이들이 옆에서 짜증을 냈다. “엄마, 오늘은 또 와이파이 안 터져!! 왜 이런 데만 와?!”

“애들은 자꾸 호텔이 좋대요. 방 따뜻하고 와이파이 터지는 호텔.”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근데 또 이런 데 오면 자연에서 뛰어놀고 밤엔 별 구경하고… 결국 좋다면서요. 모순덩어리들이에요.”

그리고 한참 뒤에, 캠핑카의 남편이 조용히 내 옆에 앉더니 고기집게를 건네며 말했다.

“사실… 제가 2년 전에 암 수술을 했어요. 다 나았고 지금은 건강한데, 그때 이후로 삶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내랑 아이들이랑 더 자주 있고 싶고, 그냥 더 재밌게 살고 싶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재밌게 사는 게 힘들더라고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 캠핑카 끌고 다니는 용기, 정말 대단하세요.”

“그쵸? 근데 그 용기라는 게… 처음 한 달은 아내랑 하루 세 번 싸웠어요. 애들은 집에 가고 싶다고 울고. 저도 ‘내가 뭘 잘못했나…’ 싶더라고요. 근데 어느 순간, 우리 가족만의 루틴이 생겼어요. 자는 자리는 좁아도, 웃는 순간은 넓더라고요.”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꼭 이상적인 가족만이 특별한 건 아니라고. 이 사람들도 결국, 무너졌다가 다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웃으며 사는 중이었다. 빛나는 캠핑카 안에서의 삶도, 현실은 그 안에 가득 담긴 소소한 갈등과 타협의 반복이었다.

캠핑장 한켠, 삼겹살 냄새가 풍기던 그 자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잠깐이지만 따뜻한 이웃이 되었다.

밤이 깊어지며 아이들은 모두 텐트며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고, 어른들만 캠핑 테이블에 남았다. 불멍 대신 벌겋게 피워둔 화롯불을 바라보며, 맥주 캔이 하나둘 비어갔다.

캠핑카 부부가 서로 티격태격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내는 그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땐 진짜 이 사람 가버리나 싶었어요. 애들 몰래 많이 울었어요... 캠핑카 끌고 나온 건 우리한텐 마지막 시도 같은 거였어요.”

그 말을 듣자 괜히 내 얘기도 꺼내고 싶어졌다.
“저희도 사실… 한 번 헤어질 뻔했어요. 아이 태어나고 나서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불멍 위로 오르던 연기가 잠시 멈춘 듯 조용한 순간, 내가 그렇게 말했다.
캠핑카 아내가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리 부부는 결혼 10년 동안 아이가 없었어요. 처음엔 뭐, 자유롭고 좋았죠. 주말엔 늦잠 자고, 둘이 손잡고 영화 보고, 갑자기 여행도 가고. 친구들이 부럽다고 할 정도였어요. 둘이 너무 잘 맞았거든요.”

캠핑카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자유, 그거 진짜 행복하죠. 저희도 애기들 생기기 전엔 캠핑 대신 클럽 갔어요.”

모두가 웃었다. 나도 피식 웃다가 이내 다시 말 이어갔다.

“근데 그게 너무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그런 삶이. 근데 어느 날 정말 기적처럼 아이가 생겼어요. 진짜, 갑자기. 병원에서도 ‘이건 기적’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우리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몰라요. 임신 소식 들었을 땐 둘이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어요.”

“…그런데요?”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현실이 너무 달랐어요. 나는 당연히 아이가 생겼으니 우리의 삶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남편은 그대로였어요. 저녁엔 여전히 늦게 들어오고, 회사 일이 바쁘다고 술 약속 계속 잡고, 주말엔 피곤하다며 늦잠 자고. 근데 나는 하루에 세 번씩 젖병 삶고, 아이 열 나면 응급실 가고, 밤새 2시간 간격으로 깨고… 머리는 떡지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거무튀튀하고… 회사에선 또 눈치 보이고. 완전 지옥이었어요.”

“그걸… 얼마나 혼자 감당하셨어요?”

“1년. 딱 1년. 그 뒤엔 터졌죠.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이렇게 소중하게 얻은 아이인데, 왜 나만 이걸 온몸으로 겪고 있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나도 일하잖아. 나도 힘들어.’ 이러는 거예요. 그 말 듣고 완전히 돌아섰어요. 그래서, 진짜 이혼한다고 했어요. 문자로.”

캠핑카 부부가 놀라서 동시에 말했다.
“헐 문자요?”

“네. 그날 남편 회식 가는 날이었거든요. 나 혼자 애 열 나서 응급실 데려갔다가 집에 와서 너무 지쳐서… 침대에 앉아 그냥 보냈어요. ‘이제 그만하자.’ 딱 그 한 줄.”

“남편 반응은요?”

“처음엔 어이없어했죠. 제가 그냥 욱해서 보낸 줄 알았나봐요. 근데 내가 진짜로 애 데리고 친정 갔거든요. 그때서야 남편이 깨달은 거죠. 그제야 전화 오고, 미안하다고 울고불고… 근데 나도 이미 너무 지쳐 있었어요. 감정이 다 닳아버린 느낌?”

캠핑카 아내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다시 화해하게 되셨어요?”

“각자 시간을 좀 가졌어요. 나는 상담도 받았고, 사람들이랑도 많이 얘기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남편한테서 손편지가 왔는데, 그게 좀… 마음을 건드리더라고요.”

“손편지요?”

“네. ‘너무 늦게 알았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무심했는지. 근데 다시 해보고 싶어. 이번엔 진짜 잘하고 싶어.’ 라는 문장이 있었어요. 뻔한 말인데… 그 말이, 왠지 진심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돌아오셨어요?”

“네. 다시 시작해보자고 했죠. 근데 완전히 달라졌냐? 그건 아니에요. 지금도 남편 가끔 눈치 없고, 나도 욱하고 그래요. 하지만 서로 노력해요. 예전엔 둘 다 각자 자유롭게 살려고 했다면, 지금은 진짜 ‘같이’ 사는 게 뭔지 배우고 있어요.”

잠시 정적. 우리 넷은 조용히 불을 바라봤다.

그 순간 캠핑카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오늘 그 화해기념으로 건배할까요? 결혼 다시 시작한 사람들끼리!”

나는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좋아요. 다시 사는 우리에게!”

맥주가 짠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불빛에 반짝이는 그 거품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어딘가에서 반짝였다. 슬프지만 웃기고, 힘들었지만 따뜻하고,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시작한 이야기.

그건 우리만의 일도, 그 가족만의 일도 아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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