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 읍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금세 커다란 철제문이 나타났다. 대문 앞 조그만 공터에 차를 세웠다. 멍멍, 컹컹, 우우. 강아지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잔뜩 긴장되어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차에서 내렸다.
2년째 코로나로 우울해하던 그해 8월, 우리 가족은 내가 근무하던 울산에 내려와 여름휴가를 보냈다. 4일째 되던 날, 마지막 일정을 위해 온양으로 향했다. 일전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식당, <발리동천>에 몇 번 다녀간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은 지역이었다. 발리동천은 다양한 수목, 꽃, 조각품이 어우러진 예쁜 정원과 기와굴뚝이 멋스러운 한옥카페, 깔끔한 식당이 어우러진 휴양지 같은 곳이다.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에서 영감을 받았나 보다. 이름 참 잘 지었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리동천의 ‘발리’는 온양 읍내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동천은 아마도 발리 동쪽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바로 옆에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울산에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와 이름이 같은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오래전부터, 아내는 전원주택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 ‘찐’ 인데, 아직도 생각이 나고,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시절엔 강아지를 집안에 데려오는 걸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추워도 강아지는 마당 한 구석 개집에서 밤을 보내야했다. 찐이가 걱정되어 옷가지로 덮어주었지만, 한겨울 내내 얼마나 추웠을 지를 생각하면서 마음 아파했다. 울산으로 휴가 떠나기 두어 달 전, 아내는 이제 그 오랜 꿈을 이룰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본인 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이 최우선이었기에 강아지 입양을 미루어 왔는데, 이제 아이 둘 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본인 일을 줄여서라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덜컥 걱정이 되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좀 덩치 있는 개가 다가오면, 물릴까봐 방어 자세를 취하며 잔뜩 긴장하곤 했다. 강아지가 혀로 핥으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어 싫었다.
“강아지 털이 집안에 날아다니면 음식에 떨어지지 않을까? 털 알레르기가 있으면 어떡하지? 아파트에서 뛰거나 짖으면 크게 문제가 될 텐데.”
나는 우려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오랜 아내의 소망이었고, 딸아이도 어릴 때부터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했던 터라, 반대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남들도 다 키우는데 못 할 게 있겠어?"
"단, 털이 잘 안 빠지고, 체구가 작은 견종으로 데려와야 해.”
그런 조건이면 말티즈, 푸들, 말티푸가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적당한 펫숍을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입양 결정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견이 생겼다. 딸아이가 애견보호센터 자원봉사를 다녀온 후, 펫숍에서 강아지를 분양받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펫숍에서 분양하는 강아지 대부분은 돈을 목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대량생산되는데, 거기서 분양받으면 불법적인 개농장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아내도 딸아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유기견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 된다면서 불쌍하다고 했다. 믿기 힘든 이야기라 설마 했는데 뉴스를 검색해보니 사실이었다. 매년 제주도에 버려지는 강아지가 수천 마리나 되고, 절반가량은 입양자를 찾지 못해 안락사 되고 있다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유기견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원하는 견종이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은 되었다.
발리에는 울산에서 가장 큰 유기동물보호센터가 있었다. 미리 인터넷 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접속하여 보호 중인 강아지 명단과 사진을 둘러보았다. 생후 1개월 된 귀여운 황색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전화를 걸어 그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하고 방문시간을 정했다.
드디어 유기동물보호센터 철제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아지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예약해 둔 강아지를 관리자가 데리러 갔을 때, 앞마당에 매어 있던 하얀 강아지가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우리를 반겼다. 4~5kg은 되어 보였다. '고 녀석 귀엽게도 꼬리를 흔드는구나!' 등을 쓰다듬으니 헤헤거리며 엉덩이를 들이댔다. 조금 후 관리자가 돌아왔다. 두 팔에는 예쁜 아기 강아지가 안겨 있었다.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견종은 알 수 없었지만, 무게가 1.5kg으로 작고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때, 관리자는 갑자기 앞마당에 있던 하얀 강아지에 대해 말했다.
“이름이 로미오에서 따온 ‘미오’인데, 똑똑하고 사람을 참 잘 따라요. 케이지에 넣어 우리에 두었는데, 계속 울어서 앞마당으로 옮겼어요. 오가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꼬리 흔들고 반기는지 몰라요.”
관리자는, 작고 어린 강아지는 데려가려는 사람이 많은데, 4개월 된 미오는 사람을 잘 따르는데도 꽤 커서 그런지 입양이 안된다면서 불쌍하다고 했다. 예약해둔 아기 강아지를 데려오려니,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 미오가 눈에 밟혔고,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고민하다가, 미오가 입양이 안 될 수 있으니 우리가 데려가자고 했다. 벌써 5kg이라 앞으로 얼마나 더 클지 걱정되었지만, 우리한테 먼저 정을 준 미오를 입양하기로 했다. 녀석의 프로펠러 꼬리에 모두 반한 것이다.
두 강아지의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예약해둔 아기 강아지에게는 미안함과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했다. ‘너는 아기니까 곧 입양이 될 거야.’
입양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우리도 반려견 가족이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관리자가 미오 목에 부착된 식별태그를 가위로 자르면서 말했다.
“미오야, 이제부터 너의 행복 시작이야!”
그 말이 가슴에 찡하니 와 닿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보호센터에서 녀석을 종이박스에 넣어 주었다. 녀석은 상자 속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보호센터를 나오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부터 식당에 가려면 애견동반이 가능한 곳에 가야했다. 급한 데로 바로 옆에 있는 발리동천으로 향했다. 마당에 미오를 매어 두고, 창문을 통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금방 미오가 끙끙대며 울기 시작해서, 한 명씩 교대로 미오 곁을 지키며 식사를 마쳤다. 녀석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강아지 용품점부터 들렀다. 켄넬, 사료 등 몇 가지 용품을 구매한 후 400km를 내달렸다. 생애 첫 장거리 여행에 멀미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녀석은 다행히 멀미 기색은 전혀 없었고, 불안함과 낯 섬도 사라진 채 호기심만 가득했다.
아내는 보호소에서 임시로 지어준 ‘미오’라는 이름을 바꾸자고 하였다. 의미 있고, 예쁜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출신지역 이름을 따서 ‘발리’라고 부르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이름을 부를 때 마다 버려진 강아지라는 생각이 나서 슬프다며 다른 이름을 찾아보았다. 고민 끝에 맘에 드는 이름을 아내가 찾아냈다. 아내의 성을 딴 ‘이’에다가 ‘리온’을 붙인 ‘이리온’. 자연스럽게 이리온 하고 부르는 말이 이름이 되었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리온이야.’
우리 가족은 리온이의 견종도, 얼마나 클지도 모른 채 끝까지 책임지고 행복하게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리온아, 이제부터 우리의 행복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