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더 헬스
<왓 더 헬스 (What the Health), 2017>
IMDb rating: 7.2/10
감독: Kip Andersen, Keegan Kuhn
촐연: Kip Andersen, Larry Baldwin, Neal Barnard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입니다.
한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유명 배우가 판매하던 제품에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제조 과정에서 생긴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어 안전하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송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해당 회사는 물론 같은 종류의 제품을 파는 다른 회사들도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 결과, 그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정 보도가 나왔을 때는 이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뒤였습니다.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끝까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일 이후로, 다큐멘터리나 탐사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됐습니다.
"이게 진짜 사실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왜곡된 관점일까?"
다큐멘터리는 '기록'이 아니라 '서사'이다.
요즘은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에서나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졌습니다.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편향(Bias)"입니다.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어떤 음악을 깔고, 어떤 문장을 덧붙이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실이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점으로 치밀하게 편집된 강력한 서사입니다.
왓 더 헬스가 일부에서 비판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제작자의 의도가 곳곳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나 건강 관련 단체 관계자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제작진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질문을 던집니다. 응답자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화를 돋우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갑작스럽게 화면을 끊어버립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저 사람들, 뭔가 숨기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전략입니다.
감정이 사실을 이긴다
또한 다큐멘터리는 감정 조작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충격적인 장면, 긴장감을 높이는 편집, 공포심을 자극하는 음악. 이런 요소들에 노출되면 우리는 어느새 사실보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왓 더 헬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중 하나를 예로 들겠습니다. 영화는 "가공육은 1군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햄과 베이컨을 먹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식탁에 앉은 아이들에게 담배를 서빙하는 장면이나 연기 나는 담배가 꽂힌 핫도그를 먹는 장면을 삽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꽤 강렬하고 인상적인 연출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건 분명한 과장입니다. 가공육이 1군 발암물질인 건 사실이지만, 그 위험도가 담배와 동급이라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비주얼의 힘이 사실의 경계를 흐려놓은 순간입니다.
육류, 유제품 업계를 다루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운 색감, 음산한 음악, 음모론적 내레이션이 더해지면, 복잡한 경제, 정책 구조는 순식간에 "악의적인 세력의 음모"로 단순화됩니다. 우리는 종종 정확한 데이터보다 선명한 이야기를 더 오래, 더 강하게 기억합니다. 그 이야기가 과장되었더라도요.
보여주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논쟁적인 다큐일수록 팩트 체크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연구 결과만 인용하고, 반대되는 자료는 조용히 생략하며, 단순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처럼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전달하고 싶은 결론에 맞는 증거만 골라내면, 다큐멘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정보가 아니라 선전이 됩니다.
그 피해는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심각합니다. 그 대상이 정부 조직이나 대기업이면 사회적 파장으로 그칠 수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국내 사례처럼, 개인이나 소규모 사업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 아래, 오히려 힘없는 약자가 희생되는 역설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큐멘터리는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를 무조건 불신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큐멘터리는 세상이 외면하고 지나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환경오염, 산업재해, 공장식 축산의 구조적 문제, 공중보건의 사각지대. 이런 불편한 진실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종종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발언권이 없는 약자가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그 증언이 때로 정책 변화와 구조적 개선의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왓 더 헬스 역시 식품 산업의 이해관계와 우리의 식습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분명히 기여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다큐멘터리 자체가 아니라 관람자의 태도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때로 진실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때로는 진실을 가리는 그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양면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갖추는 것 — 자극적인 서사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제작자가 보여주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 — 이것이 편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