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오지 않았다.
힘들고 위험한 성묘길을 처절하게 거부하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던 막내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다가오는 날짜에 변하지 않았던 날씨예보 덕분에 막내는 적당히 포기를 하고, 벌에 쏘이지 않을 밝은 색의 옷을 고르고선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9월인지 8월인지 모를 여름 날씨와 길을 내면서 가야 하는 가파른 경사에 어머니와 함께 한 성묘는 쉽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쓰러지지 않을 곳까지만 올라가고 더 위에 계신 분들은 합동으로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성묘를 가자고 말씀하시며 올라가는 건 문제없다고 장담하셨던 어머니가 중간에 포기하시며 막내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우리 집 막내는 덩치도 덩치지만 매우 심각한 평발이어서 평소에도 오랜 시간 걷는 걸 힘들어한다. 이번에도 “아빠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를 반복하며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훨씬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해졌음을 느꼈다.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군대 갈 시기가 다가왔음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땀범벅이 된 가족들은 곧바로 아버지가 계신 현충원으로 향했다.
명절 바로 전이어서 그런지 현충원은 평소 주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내리쬐는 햇볕에 트렁크에서 몇 년을 외로이 버텼던 낡고 망가진 우산을 가까스로 펴서 아버지의 비석을 닦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그늘을 만들어 드렸다.
공교롭게도 현충원에는 사돈어른도 함께 계신다. 서울 사시는 형수님이 발등 골절로 거동하기 힘드신 까닭에 사돈어른께도 들러 가을 국화를 꽂아드리고 소주 한 잔 올리며 인사를 드렸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현충원에 가면 늘 찾는 국숫집을 방문했는데, 아뿔싸 여기 사장님도 성묘 가셨나 보다. 내가 쉬면 남도 쉴 거라는 단순한 이치를 내가 왜 깨닫지 못했을까......
결국은 어머니 사시는 곳 근처로 자리를 옮겨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허기를 채우고 우린 무사히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는 혹시라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진드기라도 있을까 싶어 현관에서 모두 탈의한 후 곧바로 빨래 돌리기, 나이 역순으로 샤워하기, 에어컨 틀고 각자 가장 편한 곳에서 잠시 뻗어있기에 돌입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깊은 낮잠에 빠져 들었고, 해가 지고 나서야 다들 우두둑 뼈가 맞춰지는 기지개 소리를 내며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모여 앉았다.
오늘 하루 4시간 운전에 과일과 부침개 등으로 가득했던 가장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막내가 뒤쳐지면 손 내밀고 어머니가 뒤쳐지면 뒤에서 밀고 가던 나였기에 사실 나만큼 힘든 하루를 보낸 이가 없을 텐데, 어째 이 가족들은 다들 비리비리하다.
벌겋게 탄 얼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던 나에게 막내가 물었다.
“아빠 안 힘드세요?”
“얌마 아덜, 아빠잖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삭신이 쑤신다.
그래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아빠가 되면 힘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