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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Apr 01. 2023

[호모룩스-7]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로버트 C. 솔로몬이 안내한 사랑- 

[호모룩스 이야기-7]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로버트 C. 솔로몬이 안내한 사랑                    




                                                                                                                                                 



  사랑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오묘하고 다채로운 단어 ‘사랑’. 로버트 솔로몬(Robert C. Solomon)의 책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이명호 역, 오도스 2023)’은 사랑에 관한 철학적 사색의 숲으로 안내한다. 이 숲속 길은 평탄하지 않다. 여기저기 덤불이 엉켜있고 경사지고 가파른 데다가 큼직한 바위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어쨌든 이를 악물고서라도 숲으로 들어오면, 여지없이 환상이 깨지고 만다. 그러니까 사랑은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제목은 억지로 던져놓은 출판사의 미끼인가?       




  숲을 향한 길은 험난하더라도 이런 꿈을 꾸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동그랗고 자그마한 호수가 있다. 호수 기슭에는 거룻배 한 척이 매여있다. 호수를 마주한 곳에는 근사한 이층집이 있다. ‘18세기 궁정풍’ 스타일의 집이다. 돔 모양 지붕 위에 달린 새는 햇살을 받아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정원에는 하얀 보를 두른 둥근 식탁이 놓여있다. 새하얀 레이스 장식을 한 의자도 함께 있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차와 ‘마들렌’이 있다. 옹기종기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가 된듯한 보랏빛 알리움 세 송이가 투명한 병에 담겨 있다. 이제 곧 그가 나타날 것이다. 페르시아 신비주의자 루미의 시처럼 그가 오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소용이 없다. 너무나 눈부신 그가 온다면, 사실 기껏 차린 이 모든 것 또한 별 의미가 없다.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서 솔로몬은 이런 기막힌 숲속으로 이끌고 가지 않는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책을 뒤적여보아도 숲은 여전히 숲이고, 집은커녕 호수조차 보이지 않는다. 달콤한 향기와 매혹적인 풍광과 뺨을 간질이는 미풍도 없다. 그렇지만 묘한 일이 일어났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래전, 이십 년 전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여지없이 사랑에 실패했고, 영혼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침. 햇살은 내 눈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바람은 내 뺨을 함부로 갈겨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는 뜬금없이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면 좋을지 떠올렸다. 



     

  사랑은 희생일까? 

  바로, 반감이 일어났다. “내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내 인생을 다 쏟아부었잖아!”라고 했던 어머니의 새된 말이 곧바로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랑은 알뜰한 구속일까?

  구속조차도 너무나 좋아서 모든 것이 허용될 정도의 마음이 사랑일까? 관심과 염려 때문에 하는 구속이라면, 그야말로 ‘알뜰’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어머니였다. 근무를 마치고 10분의 오차가 생기면 어디 가서 뭘 했냐고 따지고 들었다.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해댔다. 그게 사랑이라고? 턱도 없는 소리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았지만, 만약 진짜배기 사랑이라면, 만약 그런 사랑을 내 생애 한 번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이런 말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영혼의 부추김이다.”

  나는 걸어가면서 내 무릎을 손바닥으로 쳤다. 서로의 영혼을 부추겨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사랑인 것이다. 서로를 깔아뭉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면서 서로의 영혼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그날, 그렇게 내린 사랑의 정의를 내 가슴 깊은 곳에 새겼고, 나는 ‘사랑’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전에는? 사랑을 저주하고 비난했다. 내 삶에 사랑따위는 없었으므로. 




  솔로몬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랑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존재한다. 이 웅대한 사랑의 이유는 ‘우리가 서로에게서 최상의 것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227쪽-




“연인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이나 지선이나 성취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연인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최고의 것을 끌어내 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 우리가 가진 최고의 감수성을 알아보고 격려해주고 우리의 악덕을 주저앉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356쪽-          




  나는 2007년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폐동맥 출혈로 6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솔로몬이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박수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얼떨결에 나도 솔로몬처럼 박수를 보내고 엄지 척을 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판타지에 나오는 숲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숲길은 만만치 않다. 숨 가쁘고 힘겹게 걸음을 옮겨서 한참 만에 겨우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아름다운 집과 호수가 아니라 ‘터널’이었다.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또다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축축한 어둠을 뚫고 갈 마음을 내야 한다. 터널 안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분명 빛을 만날 수 있다. 이 과정을 솔로몬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이 일은 바로 지금, 한 번에 두 사람씩, 우리 모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이다. 그렇게 터널 안을 통과하면서 성장하는 나, 성장하는 만큼 재발견되고 재발명되는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솔로몬의 찬사를 받으며 어둠에 굴하지 않고 쩌렁쩌렁하게 삶의 노래를 부르며, 사랑의 터널 안을 통과하는 중이다.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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