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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Mar 18. 2023

[호모룩스 이야기-6] 전우원의 고백

-나와 우리 가족은 범죄자입니다-


                                                전우원의 고백

                                    -나와 우리 가족은 범죄자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해프닝일까? 2023년 3월 13일부터였다. 역사에 묻힌 잔인한 인물 전두환이 뉴스에 등장했다. 그의 손자인 전우원이 유튜브에서 까발리기 시작한 것이다. 십자가와 그 아래 ‘신성한’ 혹은 ‘복 받은’이라는 뜻을 가진 ‘Blessed’가 빛을 발하고 있는 하얀 방에서 그는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나는 범죄자입니다. 마약과 성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범죄자입니다.”



 “제 아버지는 저에게 할아버지는 민주주의의 영웅이고 광주 민주화 운동은 북한 빨갱이들이 일으킨 폭동이고,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으며 우리는 피해자다. 우리는 나라에 부를 가져다준 위인들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자가 교회에서 목사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친척이나 지인들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자신에게 마약을 권했던 사람이라고도 했다. 숨겨진 부정한 돈을 조부모가 보내줘서 생계와 학비를 해결했다는 것도, 그동안 엄청난 돈세탁을 했으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자금이 존재한다는 것도, 통장에 29만 원이 전부라고 했던 조부가 생전에 호화롭게 지냈던 것도, 집에서 초호화 스크린 골프를 치는 최근의 조모도, 자신의 모친을 두고 상습적으로 불륜을 저질러서 자신을 잘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행각도 모조리 쏟아냈다. 각 방송사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을 것이다. 부랴부랴 그가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해서 인터뷰하기도 했고, 가장 뜨거운 뉴스거리가 되었다. 전우원에 대한 담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처 받지 못했던 추징금을 받아낼 수 있을지, 비자금의 행방을 찾아내어 법적인 조치를 내릴 수 있을지, 이런 폭로를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여러 말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3월 17일 새벽 5시에 갑자기 돌발 행동을 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마약을 먹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마약을 먹었다고 했다. 곧이어 소리를 지르고 무서워서 떠는 환각 증상을 보였고, 마침내 미국 경찰이 들이닥쳐 방송은 중단되었다. 그는 병원에 이송되었고, 의식불명 상태에서 간신히 호흡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영상에서 그가 많이 썼던 단어는 ‘범죄자’였다. 날조된 가족사를 낱낱이 폭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언제부터 가족들의 겉은 화려하고 속은 곪아있는 이중적 실체를 알아차렸을까?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졌던 혼란은 얼마나 컸을까? 조부가 무고한 이들을 숱하게 죽였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가 겪었을 충격에 대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조부가 준 돈으로 학비를 냈던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보면, 또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는 그동안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다. 2022년 12월에 자살 시도를 했을 때 그는 지옥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게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부정부패와 권모술수와 물질주의에 찌든 채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폭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거대한 카르텔과 같은 집안의 내력은 이미 법망을 피한지 오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유튜브로 고발을 이어가면서 자신도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자신의 범죄 행각과 관련해서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지 다 공개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자신부터 어떻게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세상에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마약을 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거하고 벌 받아야 되니까.”

  환각 직전에 그가 한 말이다. ‘죄’와 ‘벌’은 양심이 있는 자에게는 엄중한 십자가다. 성찰을 팽개친 자에게는 ‘죄’와 ‘벌’은 재수가 옴 붙을 때 오는 것일 뿐이다. 전우원은 최근의 자살 시도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유혼이라도 만났던 걸까? 놀라운 폭로를 할 수밖에 없도록 내면을 움직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법을 피해서, 남을 짓밟고 죽이더라도 나와 우리 가족만 잘 먹고 잘 사면 된다고 하는 논리에 그는 반기를 들고 말았다. 그는 돌발적으로 가족, 특히 부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절제력을 잃은 마약중독자에 불과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큰 용기를 냈고 실천에 옮겼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면서 썩은 쓰레기 같이 살아가는 전도사인 부친, 또한 가족 모두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지 알고 있다. ‘내 어머니는 경계성 인격장애입니다.’라는 사실을 말하기까지 내 전 생애가 걸렸다. 그저 짜증이 심한 우울증 정도로 치부해버리기도 했다. 알면서도 동시에 거부했다. 차마 내 어머니를 괴물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어머니는 나를 악마라고, 사탄이라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수도 없이 나를 때렸고, 언어폭력은 그냥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인격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20년에 자전적 소설 ‘푸른 침실로 가는 길’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살 시도를 하다가 포기했던 이십 대 초반, 글 다운 글을 써보고 죽자고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한 거였다. 그렇게 소설을 쓰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인격이 망가진 사실을 고백했다. 그 소설은 내 인격도 그렇게 엉망이 되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만큼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을 만큼 쓰라렸다. 아파다라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아팠다. 정작 소설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아무도 사 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뻑적지근한 영혼이 마사지를 받고 말랑말랑해지고, 마음은 평온해졌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고 누군가 대놓고 나를 비난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도 어머니 같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듬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아프게 내몰았던 어머니는 올해 91세이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어머니 방에 가서는 이불 안에 고개를 빠끔 내민 어머니 얼굴에 뽀뽀를 한다. 밥을 차려드리고 등을 밀어주고 자주 안아드린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원망하고 저주해왔던 나를 이렇게 가다듬고 순한 마음을 내도록 한 존재는 바로 신이다. 그러니, 신이 내게 ‘Blessed’를 내린 것이다. 놀랍게도 어머니도 순해지셨다. 기물을 파손하고 욕설을 하고 내게 칼을 들이대던 어머니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살다 보면, 이럴 때가 온다. 이십 대 때, 나는 평생을 어머니와 살게 될지 몰랐다. 그렇게 난폭했던 어머니가 아이처럼 나를 의지하게 될지도 몰랐다. 어머니가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사실을 부인했을 때, 나도 그렇다는 사실을 함께 부정했다. 그런 부정이 더 큰 부정을 낳았다. 사실을 솔직하게 직면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무던히도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그럴 때 엉망으로 일그러진 영혼이 펴지게 된다. 여기저기 뭉쳐서 단단해진 마음의 근육이 탄력 있게 변하게 된다.           


  2020년 6월에 잭 에반스라는 18세 청년이 강간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그는 17세 때, 성폭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피해자는 고소하지 않았지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을 보고 눈치챈 아버지는 아들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된다. 잭 에반스는 그 당시 대학에 막 진학해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인생을 거짓으로 가린 채 계속 살 수는 없다. 자백은 괴롭지만 그만큼 옳은 일이다.”라고 하며 아버지는 아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아들은 소년원에 2년간 수감 되고, 10년간 성범죄자로 등록된다. 아버지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린 아들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판결로부터 2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출소했을 것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잭의 삶은 아름답고 훌륭하게 변화했을 것이다. ‘회개’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죄짓는 삶의 태도를 깨뜨리고 나와서 신한테 귀의하면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일컫는다. 


  도스토엡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로니코프는 대학생이었다. 그는 인류를 ‘나폴레옹’과 ‘이’로 구분하는 독특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선악을 초월해서 자신이 법처럼 굴 수 있는 비범하고 강력한 소수의 인간과 인습에 얽매이고 나약한 다수의 평범한 인간을 스스로 상징한 개념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폴레옹에 속한다고 믿고 한 마리 이에 불과한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지만, 노파의 착한 동생마저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양심의 몸부림으로 괴로워한다. 매춘부지만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소냐를 찾아가서 범행을 고백한다. 

 

 소냐는 네거리 광장에 서서 더럽힌 대지에 절을 하고 입을 맞춘 다음 온 세상을 향해 절을 하면서 소리 내어 만인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권유한다.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소냐가 시키는 대로 그렇게 한 다음 자수한다. 소냐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벌을 받게 된 그를 따라간다. 라스콜로니코프는 못마땅하다는 듯한 태도나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채 소냐를 대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불현듯 무언가 그를 사로잡아서 그녀의 발에 몸을 던지게 한 것 같았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안았다.” 

  소냐는 무한한 행복감에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다본다. 죄를 짓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벌만으로만 끝나지 않는 소설이 바로 ‘죄와 벌’이다. 라스콜리니코프를 무릎 꿇게 한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은 광장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나는 범죄자라고, 우리 가족은 모두 범죄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말은 뜻깊지만, 그가 가야 할 길은 꽤 멀고 지난하다. 급선무는 마약이다. 마약을 완전히 단절할 때, 비로소 그가 외친 고백이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이다. 진리가 자유를 줄 수 있다는 성경 말씀처럼, 진리 위에 그가 설 때 제대로 된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럴 때 자신과 가족에 관한 그의 말들이 그저 억눌린 원한으로 인한 일화적인 폭로가 아니라 치유를 위한 자기개방, 회개로 이어질 것이다.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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