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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Feb 09. 2023

[호모룩스 이야기-2]     
문은 곰


[호모룩스 이야기-2]      

                                                            

                                                     

                                   문은 곰               




                                                                                                                                                                                                                                  시아

         




  천안 개방교도소에 가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부지런히 설쳐서 겨우 제 시각에 도착했다. 아홉 시부터 장장 오후 네 시까지 해야 한다. 멀리서 온다는 것 때문에 배려해준 덕분이지만, 벅찬 일정이다. 입춘을 지나서인지 제법 날씨가 풀렸다. 민원실 앞에서 교도관의 인솔을 기다리는데 그다지 춥지 않았다.     


 

  교도소에 올 때마다 부딪쳐오는 느낌이 있다. 누군가는 민원실 벽에 기대서서 한없이 울었으리라. 누군가는 접견실 앞에서 구겨진 인상으로 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으리라. 또 누군가는 교도소 정문을 홱 돌아나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리라. 그러다가 다시 오게 되는 날, 절망 가득한 한숨을 길 위에 뿌려댔으리라. 

  여러 감정과 회한이 버무려진 그곳. 교도소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거절할 수가 없다. 오래전, 강의를 끝내고 나니 한 교도관이 이런 말을 했다. “강사님, 저 사람들 함부로 믿지 마세요. 아무리 강의해도 안 바뀝니다. 멀쩡하게 잘 알아듣는 듯이 보이더라도 그렇지 않아요. 돌아서면 도루묵이에요. 아예 안 믿는 게 맞습니다.” 귀한 충고랍시고 하는 말이었다. 이러다 보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교도관은 혀를 끌끌 찼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달려갔다. 수의를 입고 자유를 박탈당한 이때야말로 절묘한 기회다! 삶을 되돌아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정도다! 나는 그들의 내면을 바꾸게 할 수 없다. 다만 부름에 응할 뿐이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므로.     



  커피 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였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몰입하다 보니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모를 정도였다. 2020년, 오도스 출판사에서 발간한 자가 치유서‘당신의 마음을 글로 쓰면 좋겠습니다’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허성욱의 시 ‘그림자 인생길’을 통해 ‘마음의 그림자’를 끄집어내게 했다. ‘마음의 그림자’는 스스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경멸하는 쓰레기 같은 자신의 마음이다. 시 속의 주인공인 개는 자신의 그림자를 몰라보고 싸우려고 들다가 호수로 뛰어들어 파멸하고 만다. 시기와 질투와 외로움과 엄한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이 내가 가진 그림자라고 먼저 고백을 했다. 까발리는 내 말에 힘입어서 다들 그림자를 공책에 털어내기 시작했다. “저는요. 고집입니다. 남편이 그랬어요. 제 고집으로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고요.” 사십 대로 보이는 수형자가 말했다.     



  그렇게 널브러진 그림자를 다루는 방법을 분석심리학자 융(Jung)이 일찌감치 말한 바가 있다. 도끼로 내리찍는 것도 아니고 마구 두들겨 패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림자 껴안기’다. 수형자들한테 소리 내어 자신의 그림자를 읽게 했다. 그다음에 손을 엑스자로 엇갈리게 한 다음, 가슴께에서 한데 모은 다음 어깨를 다독여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보도록 했다.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 눈을 감고도 해보자고 했다. 몇몇 수형자들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으로 안수환의 시 ‘문’을 통해 마음의 문을 떠올려보자고 했다. 시에는 열린 문은 힘주어 닫으려고 하고, 닫힌 문은 반대로 열려고 하는 눈물겨운 내가 등장한다. 시의 느낌에 대해 삼십 대로 보이는 수형자가 말했다. “이 시를 보니까요. 과거의 제가 생각났어요. 그때, 제가 이 시에서처럼 잔뜩 힘을 주며 있었어요. 지금요? 지금은 아예 힘을 다 뺐습니다. 줄 힘도 없어요.” 몇몇 이들이 동감한다는 듯 웃었다. 

  ‘문’하면 떠오르는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써보자고 했다. 이어서 열리든 열리지 않든 그대로 수용한 내가 그 대상한테 보내는 말을 써보자고 했다. 몇몇 이들이 ‘출소’라고 썼다. 한 수형자는 도저히 쓸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출소만 생각해도 엄청 힘들어서 모두지 쓸 말이 없다는 거였다. 다른 이는 ‘욕’이라고 썼다. 누군가를 욕하고 싶고 투덜대고 싶은 마음한테 말을 걸었다. ‘욕아, 자꾸 내 안에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구나. 네가 그러고 싶다는 것, 잘 알고 있어. 터질 때는 터지더라도 조금씩 줄어보자. 얼음이 녹아가듯이 조금씩 녹여보자. 그러다가 아예 없어지는 날도 있을 거야. 욕아, 억지로 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 삼십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욕한테 처음 말을 걸어보니 기분이 이상하다며 웃었다. 모두 박수로 응원의 기운을 보냈다. 


       

  같은 제목의 다른 시, 루미의 ‘문’에는 놀랄만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광기의 입술에 매달려 산 내가 그 까닭을 알고 싶어서 문을 두드린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데 놀랍게도 내가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시를 통해서 참여자 대부분은 자신의 삶과 희망을 떠올렸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다. 

  이어서 ‘마음의 빛’을 만나서 빛의 메시지를 듣는 순서를 가졌다. 각자 자신만의 마음의 빛깔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복식호흡으로 온몸과 마음을 이완한 채 빛이 전해주는 말을 들어보자고 했다. 그런 다음 눈을 뜨고 나서 함께 나누었다. 참석한 스물다섯 명 모두 한마디씩 얘기를 꺼냈다. 말을 마칠 때마다 박수로 축복의 기운을 보내주었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이겨내자. 포기하지마. 이런 메시지들이 노란빛, 파란빛, 보랏빛, 빨간빛, 하얀빛들 안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 그것도 범과 같이 백일 동안 나눠 먹어야 한다. 그렇게 동굴에 갇혀있어야 꿈이 이뤄진다. 범은 일찍 포기하고 동굴을 뛰쳐나온다. 곰만이 끈질기게 버텨낸다. 그 갸륵한 정성에 하늘이 감동해서 21일 만에 사람이 되게 해준다. 우리나라 시조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이야기다. ‘문’은 ‘곰’이다. 닫힌 문 앞에서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하며 보채면, 문은 보란 듯이 입을 다문다. 모든 것을 수용한 채 꿈을 품고 곰처럼 굳건하게 견뎌내다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어느 사이엔가 문이 열려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언약했던 백일이 아니라 훨씬 더 짧은 날에 갑자기 꿈을 이룰 수도 있다. 수형자들한테 문이 곰인 것을 알려 주고 왔다. 늘 그렇듯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도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제가 멀쩡해 보이나요? 이렇게 정신 차린 지 이제 겨우 십오 년 정도 되었어요. 이전에는 방황하면서 무수히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애증 관계에 있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도 엄청났지요.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말소된 ‘무적’ 상태에 있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육교 위에 구걸하는 거지 손을 잡으며 말하고 싶었어요. 저도 같은 처지입니다! 라고요. 그랬던 제가 이렇게 살아있어요. 올해 아흔한 살인 어머니와 오순도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이 오늘 한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점심 무렵, 잠시 들렀던 성성호수 공원. 그네 위에서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거꾸로 본 하늘에 까치가 부지런히 날개를 펄럭이며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제가 평안할 수 있을까요? 출소만 생각하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부르르 떨리는데요!” 막 이십을 넘겼을 한 수형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평안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부터요! 이건 선택이니까요!” 그녀가 강의의 마지막 즈음, 자신의 마음속 하얀빛이 들려준 메시지를 나눠주었다. “평안하여라. 부디 평안하여라.” 



  돌아오는 길, 해는 붉게 타오르는 문이 되어 하늘에 달려 있었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오늘 강의 제목인 ‘늘 봄을 늘 보다’처럼, 마음으로는 지금도 봄을 볼 수 있다. 언제나 봄을 만날 수 있다.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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