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만남: 얼음 성
-알바를 시작했어요. 식당 서빙인데, 평일 저녁에만 하기로 했어요.
라가 말했다.
-엄마 지인이 부탁해 와서 거절하기가 좀 그랬어요. 사흘 전부터 했는데, 힘들긴 해도 용돈을 버니까요. 할만해요. 첫날, 알바를 마치고 나오면서 달을 만났어요. 눈썹달이었어요. 가냘프긴 하지만, 강해 보였어요. 꼭 저처럼요. 적어온 글, 읽어봐도 되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는 눈빛을 빛내며 공책을 펼쳤다.
“눈썹달이 내게 말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어두울수록 빛날 거라고. 나는 점점 환하게 자라나는 중인데 너도 그럴 거라고. 나는 달한테 감사하다고 했다. 그저 감사하다고만 했다. ‘빛날 수 있다’는 표현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나는 내가 어둠 그 자체라고 생각해 왔는데, 내가 빛일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좋다. 참, 좋다.”
라의 과제는 대단했다. 매일 약속한 세 가지 말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했다고 하며 웃었다.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라는 말은 이제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저절로 하게 된다고 했다. 달을 바라보면서 퇴근하니, 힘든 하루가 상쾌해지더라고 했다. 달의 에너지를 제대로 받은 라를 축하해 주었다.
케빈 컨(Kevin Ker)의 ‘빛의 실(Threads Of Light)’을 배경음악으로 해서 최승호의 시 ‘얼음의 자서전’을 낭송해 보자고 했다.
얼음의 자서전
최승호
나는 얼음학교들을 다니면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냉동공장이었다. 아버지, 선생, 독재자, 하느님에 이르기까지 얼음 생산에 열심이었다. 결빙으로 딱딱해진 스무 살 이후에는 눈물샘마저 얼어붙었다. 나는 얼음의 성이었다. 하얀 빙벽을 두른 고독으로 얼음의 자아를 고집했다. 아무도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사랑의 불길조차 나에게 닿으면 꺼져버렸다. 빙벽의 시간 속에서,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거만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거만하다고 생각지 않았을까. 얼음동굴의 얼음도끼들, 내 수염이었던 고드름들, 결빙의 세월을 길게도 나는 살아왔다. 빙하기로 기록해 둘 만한 자아의 역사!
최승호는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서 춘천교육대를 졸업하고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한 시인이다. 라를 시의 바다로 안내했다.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면서 바다를 오롯이 느끼는 것은 오롯이 라의 몫이다.
시에서 많이 등장하는 ‘얼음’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얼음 학교들을 다니면서 얼음이 되고 만 것이다. 세상은 냉동공장 같고, 사람만 아니라 하느님조차 얼음을 만들어내느라 열심이다. 배우는 모든 것들로 인해 얼음이 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릴 적 감수성과 감성은 얼어붙은 지 오래다. 세상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다. 결빙으로 딱딱해져서 스무 살 이후로는 눈물조차 흘리지도 않았다. 얼음의 성안에 들어가서 얼어붙은 채 지냈다. 그것이 최선인 양 여겼다. 아무도 안에 들이지 않았다. 사랑의 불길은 여지없이 내 앞에서 꺼지고 말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은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런 말을 물어보지도 않고 나누지도 않았지만 거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지금, 나는 그런 나를 알아차린다. 얼음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게 얼음 같아 보이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그때 내가 들고 다니던 얼음도끼들,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얼음동굴에 혼자 갇혀있던 나. 그때는 분명 빙하기였다. 이제, 해빙기가 되어서 비로소 알아차린다. 그때 나는 차갑고 얼어붙은 채 지내왔구나!
-저도 그래요. 저는 아직 빙하기 같아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살을 생각했어요. 세상 모든 것이 저를 죽어라 하고 부추기는 것만 같았거든요. 어서 죽지 뭐 하러 사냐고 다그치는 것 같았어요. 신이 존재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요. 신이 있다면, 저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사랑받을만한지 끊임없이 묻고 인정받으려고 친구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심드렁하게 굴면, 그 친구가 얼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두말없이 헤어졌지요. 알고 보면, 그 친구가 아니라 제가 얼음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린 거였어요. 그 속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지요. 그러면서 저는 제가 가엾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게 거만일까요?
그건, 거만이었다. 나도 오랫동안 얼음 성에 갇혀있었다. 나를 가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었다. 그게 거만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나만의 아집에 빠져있었다. 타인과 세상이 얼음이니,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나는 오히려 더 큰 부피의 얼음 성을 쌓아왔지만, 여전히 세상을 손가락질했다. 이만저만한 거만이 아니었다. 거만이어도 그런 줄도 몰랐다. 빙하기에서는 빙하기의 끝을 알 수 없다. 게다가 내게 아픔을 주는 끔찍한 존재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존재다.
고통 속에 빠져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인다. 내게 고통을 주고 혼란을 주는 사람을 비롯한 만물들.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한 살 더 사는 것은 한 살 더 추해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세상이 타락했고, 모든 이들이 추잡스러우니. 더러운 세상에 뒹굴며 살다가는 나도 더러워질 게 뻔했다.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고 한순간에 생을 마칠 수 있을까? 그게 늘 고민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주저했다. 반납해야 하는 이 주일 후에 나는 이 세상 사람일 수 있을까? 책을 반납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이런 고민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과 확실히 동떨어져 있었다. 벼랑 끝에 선 삶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와글대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혼자서 고고한 척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고집스러웠던가.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영락없는 내 자서전 같았기 때문이다. 빙하기가 너무 오래 계속된 나머지, 내 삶에서 빙하기가 거의 전부라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그 반대는 결단코 옳지 않았다. 내가 슬프니 세상도 슬퍼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절한 나와 상관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을 두고 욕을 해댔다. 그런 억지가 도대체 말이 되는가!
어머니는 저주받을 만한 나를 낳은 존재니, 천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왔다. 그걸 가르쳐준 것은 또 어머니였다. 늘 입에 달아있는 욕들과 ‘죽어라!’라고 고함지르는 악다구니가 그랬다. 그러니, 내가 살맛이 나지 않는 것은 모두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바뀌어야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바뀔 리가 없으니 말짱 헛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다. 얼마나 거만의 극치를 이루었던가!
-그게 거만일 수 있다니,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럴 수 있군요. 고집을 부리는 모든 것이 거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라가 말했다. 모든 고집이 거만이지는 않겠지만, 거만은 고집을 안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곱고 말랑거리는 상태로 태어났던가! 마음은 반죽하기 좋아서 빚는 대로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끊임없이 강력하고 다양한 자극으로 인해 형태가 고정되고 만다. 단단하게 틀이 잡힌 채로 굳어간 것이다. 일단 한번 굳어진 것은 다시 빚기 어렵다. 모든 것을 다 허물어야 가능한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이미 형성된 것을 고집하다 보니 편견이나 아집이 똘똘 뭉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옳고 타인이 그른데, 그걸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아무리 판단해도 그것은 틀린 데 그걸 어떻게 두고 볼 수 있을까? 판단과 잣대를 들이댈수록 단단해진다. 물론, 단단함은 필요하다. 단단하게 이뤄진 가치관이 없다면, 제대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삶을 살아왔다면, 그 단단함을 허물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단단하게 살아왔는데 그걸 허물라고? 모든 것을 붕괴시키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