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둘이 살기 시작한 첫해, 나는 4시쯤이면 일을 마치고 비교적 빠른 퇴근을 했다. 아이를 위해서 일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일찍 퇴근을 하고 저녁도 일찍 차려 먹고 아이와 동네 마실을 다녔다. 시골로 이사를 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매일 날씨가 좋으면 어김없이 아이와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동네가 좋아 이사를 오긴 했지만 사는 집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의 변두리 작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학교 근처 집을 알아보았는데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 같은 오래된 집이었지만 월세도 매우 저렴하고 마당과 텃밭이 있어서 덥석 계약을 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집은 생각보다 더 오래되고 열악했다. 가끔 잠을 자다가 커다란 지네가 나와서 물리기도 하고, 여름에는 습도가 높다 못해 벽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다. 심지어 천장에서는 쥐가 매일 밤 달리기 시합을 하고, 전선을 이로 긁어놔서 안방 형광등을 켤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했다. 쥐가 어찌나 활개를 치고 다니던지 어떤 날은 저녁을 먹다가 자기 세상인 것 마냥 질주하는 쥐와 눈을 맞추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그 집을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런 일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정도였다. 마당에 개를 키울 수 있었고, 아파트 살 때부터 함께였던 고양이 ‘무무’도 마당냥이로 썩 만족스럽게 살았다. 시골에 살면 키우고 싶었던 닭도 집에 들여놓아서 매일 유정란을 부족함 없이 공급받았다. 거의 매년 봄이 되면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지었고, 겨울이면 넓은 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이 모두 우리 거였으며 그 눈으로 제법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마당 한편엔 텃밭을 가꾸었는데 매년 고추, 토마토, 가지 등은 장을 보지 않아도 둘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먹거리는 풍요로웠다. 텃밭 농사는 아이가 부모의 노동을 직접 볼 수 있는 교육적 용도로 시작했으나, 땀을 흘린 만큼 보답해주는 정직한 땅의 화답에 내가 더 보람되고 즐거워서 힘들어 죽겠다 싶다가도 매년 봄이 되면 또 땅을 삽질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평소 자연을 찾아 여행을 자주 떠나던 나였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매일 넘쳐나서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집에서의 생활이 매우 즐거웠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주중엔 매일 오후 산책을 하고, 주말엔 아이와 텃밭을 가꿨다. 가능하면 매일을 변화 없이 비슷한 패턴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예상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패턴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느끼고 그것은 일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여 때로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데 안정적인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와 산책하는 그 시간을 매우 좋아해서 그 동네에 살던 동안은 거의 모든 일상을 그렇게 보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갈 준비를 하면 무무가 앞장을 선다. 산책 코스는 매일 같은 곳을 다니는 편은 아니었는데 무무는 다른 곳을 다녀도 잘 따라왔고, 간혹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우리랑 거리가 꽤 멀리 떨어지게 되어도 혼자서 놀이를 마치면 반드시 집으로 잘도 돌아와 있었다. 우리의 산책이 매일 다른 곳을 향했던 것은 목적이 있었던 탓도 있었는데, 봄이면 쑥이 나는 곳을 찾았고 여름이면 오디, 살구나무가 있는 곳을 알아두었다가 찾아가기도 했으며 가을이면 감이며 대추를 따지도 않고 두는 집들을 찾아다니기도 해서 그랬다. 매일 돌아다니다가 경사가 제법 있는 곳을 알아두고 겨울이 되면 눈썰매를 타러 가기도 했다. 동네엔 딸아이의 또래들이 몇 명 있었는데, 우리 아이만큼 동네 지리에 대해 자세히 아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구석구석 많이도 돌아다녔다. 산책길에 만나는 듬직한 나무들을 보며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똑같이 생긴 나무를 보고 쌍둥이나무라 이름 지어주고, 나뭇가지가 치렁치렁한 나무를 보고 미친년 같다고 미친년 나무라고 이름 지어주기도 했다. 아이와 이름 부르기 좀 민망한 이름이지만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어쩌면 작은 일탈쯤으로 아이랑 키득거리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아이와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는 일은 매일 행복한 일이었다. 물론 내가 시골에서 살고 싶은 갈망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와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아이의 아빠는 ‘다른 친구들처럼 좋은 집에서 사는 게 아니어서 아이가 주눅이 들까 봐 걱정’이라며 툴툴거리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그런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분명 좋은 집을 지어서 이사를 온 아이도 있었고, 부유하게 사는 아이도 있었다. 조금 부유하게 살던 그 집은 자주 왕래하는 집이어서 누구나 그 집을 보면 부러워했는데, 나 또한 그런 부러움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내가 가진 것을 하찮게 여기거나 남보다 못하다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아이를 추운 데서 재우지도 않았고,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아낌없이 주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하지만 넉넉하게 사는 것이 아이에게 무조건 좋은 것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나는 내 생활에 만족했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살았던 아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으로 살았다. 아이 아빠의 그런 고민에 아이의 생각이 갑자기 궁금해져 어느 날 아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아이는 단번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며 친구 집에는 없는 것들(예를 들어, 닭이라든가 보리수나무라든가 하는)을 줄줄이 말해 역시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이는 부모의 태도를 통해 긍정적인 사고, 또는 부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다른 아이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로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갔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달라져 있을 계절의 변화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그리고 절대 흔들리지 않을 일상임을 알기에 아이는 그 속에서 흔들림 없이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유년시절 동안 내가 준 변함없는 일상이 사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육이었고,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