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고양이 아니고 사람이지

〈1화: 말보다 먼저 닿는 존재〉

by 윤사랑

새벽 6시 32분.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살살, 아주 조심스럽게. 지안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소리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지안은 루이의 기척을 기다렸다.

문 긁는 소리는 멈추고, 잠시 후,

방문 틈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들어왔다.


루이는 소리 없이 다가와

지안의 머리맡에 앉았다.

말은 없지만,

그 존재가 말보다 먼저 닿았다.


지안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천재 고양이 루이님이 오셨군.’


예전엔 꼭 6시 30분이 되면

문 앞에서 “냐옹, 냐옹” 울며 깨우던 루이였다.

그 울음소리는 알람처럼 정확했고,

지안은 그 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루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살살 문을 긁는 소리만 냈다.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지안이 조용히 일어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처럼.



지안은 그 변화가 어느 날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조금씩 궁금해졌다.



‘왜 울지 않지?

왜 이렇게 조용히 깨우는 걸까?

혹시… 내가 피곤한 걸 아는 걸까?’



그 궁금함은

감정의 울림처럼 지안의 마음을 흔들었다.

루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변화는 말보다 더 깊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어젯밤,

회사 단톡방에서

자신만 빠진 대화가 이어졌던 걸 떠올렸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이 조용히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말이 되지 않고, 눈물도 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진동처럼 울렸다.



루이는 지안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렸다.

그 순간, 지안은 눈을 떴다.

작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루이야, 오늘도 너는 나를 깨우네.”



지안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루이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건 늘 그래왔던 루이의 방식이었다

— 다가왔다가, 다시 조용히 물러나는.


거실로 나간 지안은 커튼을 걷었다.

창밖의 빛은 아직 흐릿했고,

세상은 잠들어 있는 듯 고요했다.



“루이 왔네~”

지안은 루이에게 말을 걸며

머리부터 꼬리끝까지 손을 쓱 문질렀다.

루이는 “냐옹—” 하고 대답했다.

그 소리는 안심의 신호처럼 들렸다.



지안은 웃으며 말했다.

“너 고양이 아니고 사람이지? 사람이면 냐옹해봐.”

루이는 망설임 없이 “냐옹—”

“고양이면 냐옹해봐.” “냐옹—”



지안은 소파에 앉아 루이를 바라보았다.

루이는 장난감 낚싯대를 슬쩍 건드렸다.

지안은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놀고 싶구나, 이 녀석.”



루이는 눈을 반짝이며 앞발로 낚싯대를 툭툭 건드렸다.

지안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낚싯대를 흔들었다.

루이는 점프하고, 구르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지안의 마음은 조용히 풀어졌다.

고단했던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조금은 괜찮아진 느낌이었다.


“너 진짜 사람이지?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건, 사람도 잘 못하는데.”



루이는 대답 대신

지안의 무릎에 살짝 몸을 기대었다.

그건 말보다 먼저 닿는 위로였다.


저녁 7시. 지안은 현관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은 채 거실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조용했다.



오늘도 감정은 들키지 않았고, 그게 오히려 더 피곤했다.

샐러드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지안은 루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 고양이 아니고 사람이지? 사람이면 냐옹해봐.”

“냐옹—” “고양이면 냐옹해봐.” “냐옹—” 항상 같은 대답 같은 표정.

지안은 웃었다.

그 웃음은 오늘 하루 처음으로 나온 진짜 웃음이었다.




밤 11시.



지안은 조용히 불을 끄고,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은 멀리서 반짝였고,

그 안에서 자신은 조금 더 고요해졌다.



오늘도 감정은 들키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웃었고, 동료들 앞에서는 친절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진짜 마음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가끔은,

누가 내 말만 들어줘도 풀릴 것 같은데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서럽게 느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외로움이 마음을 눌렀다.


그때, 루이가 조용히 다가왔다.

말 없이, 소파 아래에서 천천히 올라와

지안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지안은 아무 말 없이 루이의 털을 살짝 만졌다.

보드라운 감촉이 손끝에 닿자 마음이 조금 풀렸다.


“루이야, 너는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아는 것 같아.”



루이는 눈을 감고 지안의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건 말보다 먼저 닿는 위로였다.



지안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엔 아무 말도 못 하잖아.’



루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지안의 하루를 감싸주었다.



그 밤, 지안은 루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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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0부작(완결)입니다.

'인간관계에 지친 당신에게, 고양이가 건네는 조용한 위로'입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8시에 올려드릴게요. ^^*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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