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에세이

씨앗

by 윤사랑

<씨앗의 죽음: 다시 태어나기 위한 갈라짐>



씨앗은 생명이다.

그러나 그 생명은 고요 속에 접혀 있다.

움직이지 않고, 숨도 쉬지 않고,

마치 죽은 것처럼,

자신을 닫은 채 시간을 견딘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대신 그는 침묵한다.

자신의 계절이 올 때까지.



그리고 어느 날,

흙이 따뜻해지고,

물이 닿고,

빛이 스며들면

씨앗은 갈라진다.



그 갈라짐은 고통이다.

자신의 몸을 찢는 일.

자신의 껍질을 버리는 일.

자신의 과거를 깨뜨리는 일.



씨앗은 말한다.

“나는 죽어야만 자랄 수 있다.

나는 갈라져야만 피어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해체한다.

껍질은 흙으로 돌아가고,

속살은 뿌리가 되고,

심장은 싹이 된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그 탄생은

이전의 자신을 잃는 일이다.

그는 더 이상 씨앗이 아니다.

그는 식물이다.



씨앗은 철학이다.

그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진짜 성장은

자신을 깨뜨리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진짜 탄생은

죽음을 통과해야 온다는 것.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란다.

자신을 갈라낸 자리에서,

자신을 잃은 틈에서,

자신을 넘은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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