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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Sep 03. 2021

암살자들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는다


코로나로 일 년 넘게 못 만난 자식을 보러 7시간을 달려오셨다.


예전이야 쉬이 오가는 거리였다지만 칠순이 훌쩍 넘으신 지금은 무척 조심스러운 여정이다. 어제저녁 통화에서 아침 먹고 9 즈음 천천히 떠날 거야-라며 오후 4 정도 도착을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하니 벌써  받으신다. 그렇지. 몸이 마음 따라 이미 움직이셨다.


부모님은  예정시간보다  시간씩 일찍 오신다. 새벽부터 짐을 차에 싣고 있는 아빠와, 중간에 쉬어 가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로 차에서 먹을 장아찌 김밥을 싸는 엄마의 부지런함의 합동 작전이다. 7시간 쉼 없는 운전, 그걸 두 분이 해낸다. 유독 성격  맞는 아빠 엄마다. 그러나 자식 일이라면 항상 손발이 척척 맞는 스페셜 포스 특전사급 유닛이 된다.

도착 미션은 늘 예정 시간을 앞선다.


엄마표 겉절이며 묵은지, 갈비, 생고기, 직접  고사리에 갖은 반찬은 예상했지만 한여름 사골까지 끓여 오신다. 차에서 짐을 꺼내  이런 거까지 해오셨냐며 핀잔에 눈은 흘기면서 입가는 씰룩씰룩 올라간다.


도대체 아빠가 혼자 이걸 어떻게 차에 옮겨 실었는지 모를 무게의 난초 화분이  뒷좌석에 안전벨트를 매고 안전하게 앉아있다. 사춘기 손자의 도움을 받아서야 모든 짐이 차에서 내려 우리 집으로 옮겨진다.




자식을 보려고   거리를 한번 쉬지 않고 달려와 놓고도 막상 만나면 크게 서로 안아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는다. 만나도 울고 헤어져도 우는 것만 30년이다. 만나자마자 눈물로 분위기 흘리지 않으려고 괜히, 오는 길은 어땠는지, 막히긴 않았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그동안  있었는지... 대상 고 대답 없는 질문만 서로 무한 반복한다. 차마 눈은 바라보지 못하고 크게 안아 서로의 등만 툭툭 쓸어 댄다.


잠깐 반갑고, 잠깐 어수선하고, 잠깐 밥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다 엄마가 들어가 쉰다고 누우신다. 장거리 이동에 힘이 드셔서 그러나 보다 했는데 아빠가  엄마가 아직 죽지 않았다신다. 어젯밤 새벽까지 김치를 담갔다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김치를 담그면 김치가  익기  2, 3 동안 바닥이 보일 정도로 퍼먹곤 했다. 손자들도 한국, 캐나다, 아씨, 종갓집 등 어느 김치보다 할머니 김치가 최고라며 어디 좋은 식당이나 심지어 남의 집 가서도 할머니 김치 얘기를 한다.  


 먹는 내내 이번 김치는 여름 배추라 배추가 자체가 맛이 없다며 자꾸 여름 탓을 셨다. 김치의 달인 엄마가 여름 배추 맛없는 것을 모를  없건만 그걸 어떻게든 우리 식구 아는  김치 맛으로 만들어 내려고 야채 가게 배추를 들추어보고 달래보고 재어내고 버무렸다. 제법 겨울 김장 김치 맛이 났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눈도 귀도 없는 배추를 얼마나 달래고 애원을 했을까.


식사  아빠는 이리저리 집안 고칠  없는지 둘러보기 시작한다. 남편 없는 기러기 ,   데는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다 아이 방문에  있는 주먹만  구멍을 본다. 한참 혈기가 왕성한 사춘기 아들이 코로나 시국을 힘겹게 나며 생긴 자국이다. 허허 웃으며 다음엔 이런  치지 말고 요런 요런 책상 모서리 같은  치라고 팁을 주신다. 그래야 정신 번쩍 난다며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만드신다. 아들도 멋쩍어 웃으며 “이젠  그러죠


이리저리 만져보며 아들에게 고치는 방법과 무얼 사서 어떻게 바르는지 설명한  한마디 웅얼웅얼 덧붙이신다. “다음번엔  이러면 할아버지가 친다.” “?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멀찌감치 있던 내가 묻는다. 나도 손자도  보고 구멍만 노려보며 “ 이런 일이 있으면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차를 움직이지 않아 배터리가 방전됐다. 캐나다에서 차가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들다. 다리가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아빠 엄마 덕분에 음식이며 급한 불을 끄고 차도 고쳤다. 이제 혼자 기러기 생활을 할 준비가 다 돼 보인다. 이제 엄마 아빠 모시고 나들이 좀 해야지 싶은데 다짜고짜 짐을 싸서 바로 가신단다. 잠자리가 불편하시다는 명목인데 나는 안다. 미션을 다 마쳤으니 가신다는 것을. 자식과 손자들이 불편해할까 봐 서둘러 나서는 것을 안다.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왜 이렇게 갑자기 서두르냐고 말은 하면서 짐은 같이 챙기고 있다.

얘들한테 봉투를 쥐여 주고 후루룩 떠나셨다. 미뤄놨던  정리를 하다 보니 엄마가 가져가신다던 물건들과 놓고 가신 물건들이 보인다. 서둘러 전화를 한다. 1시간도  되었다. 멀리  가셨으면 다시 돌아오시라고. 그냥 다시 오시면 안 되냐고…

연결음만 들리고 전화는  받으신다.


어제 엄마가 요즘 소리가   들린다며 엄마 핸드폰 소리  들리게 조절해 달라고 하셨다. 너무 키우는  아닌가 싶게 엄마 핸드폰 볼륨을 올려놓은 기억이 난다. 다시 전화를 걸어본다.


한번 떠난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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