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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Jun 12. 2024

아흔일곱 번째 : 학교 선생은 절대로 안된다는 공감대

그제부터 시작된 엄마 친구의 대환장 막말 파티

제가 부모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딱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어쩌다 보니 제 지도교수님이 아니라 다른 교수님이 저를 정말 촘촘하게 괴롭혀주시는 바람에 제가 "당신 면상 보기 싫어서라도 내가 대학원 안 간다"라고 이야기하고 그냥 접었습니다. 외국에 갈 기회가 생겨도 계속 그 교수님이 저에 대해서 이상하게 말을 하고 다녀서 저는 천하에 개자식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외국에 가는 것도 그렇게 허락이 되지는 않았어요.


두 번째는 지켜보려고 했는데, 몸이 항상 아프기는 했는데, 제가 감당이 안될 만큼 아프기 시작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어머니께서 "남의 집 딸도 소중한 그 집 자식이니 빨리 헤어져라. 안 그러면 쟤 인생은 너 때문에 한 번에 나락으로 갈 텐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셔서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수술을 한국에서 받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 '외국에 가서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살아서 혹은 멀쩡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던 찰나에 수술이 성공해 버렸는데요. 부모님 입장에서야 죽을 수도 있었던 자식이 살아있어서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제가 멀쩡히 살아난 것 때문에 죄책감 그리고 뭔지 모를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은 감지하고 있으셨는데요. 그래서 과도하게 좋아함을 표현하신 것도 아니고, 그냥 앞으로 그냥 재미있게만 살라고 이야기하시더군요.


월요일에 어머니 친구분이 전화가 오셨습니다. 제가 들은 건 아니라서 그냥 어머니 말씀을 문장 그대로 옮겨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너 엄마 친구 000 알지? 걔네 딸이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라더라.
혹시 만나볼래?
그런데 내가 너한테 불필요한 선입견을 심어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물론 만나봐야 알겠지만 엄마는 그냥 선생은 좀 싫다.
이유는 너도 알지?


그냥 어머니 말씀에 모든 게 함축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단칼에 이야기했어요.

학원 선생이나 유치원 선생은 만나도,
학교 선생은 나도 싫어서 별로 안 만나고 싶은데,
그 엄마 친구 한 성깔 하는 분인데 이거 거절해도 엄마 뒷감당 가능할 것 같아?


엄마가 알아서 하시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서 어머니 친구분 하고 통화를 하시더군요. 별로 말을 강하게 하지도 않았어요. 전화기를 붙잡고 2시간 동안 욕을 퍼붓는데, 어머니가 귀가 뜨거워지셔서 스피커폰으로 틀어놓으셨는데, 세상에 이렇게 많은 욕과 저주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어머니 친구분이 지치셔서 말이 끝나고서 어머니가 한마디 하시더군요.

그냥 싫은데 이유가 있나?
그리고 제발 내 앞에서 선생 관련해서 헛소리하지 마.
너도 알 거 아니야.
니 딸 그렇게 잘났으면 왜 우리 아들을 만나려고 하냐?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해.


평상시에 욕을 거의 하지 않는 어머니로서는 이 정도면 거의 쌍욕을 하셨다고 봐야 하는데요. 그날부터 아침부터 전화가 계속 와서 퍼붓는데, 장난이 아니고 어머니 친구분 목상태가 저렇게 해서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퍼붓는데 오늘이 정확히 3일째가 됩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래.
어차피 내가 그만하라고 해도 끝날 애도 아니고,
엄마 며칠 고생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제 지인들은 부모님과 제가 왜 이러는지 다섯 번째 글을 넘어서 부모님에게는 정말 유구한 역사가 있거든요. 그걸 아마 브런치에 다 적으려면 아마 책 10권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10


하여튼 요즘은 어머니가 걱정이 됩니다. 예전에 철의 심장을 가졌다고 불리던 어머니시지만, 지금은 그냥 할머니가 되셨거든요. 조카들한테도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시면서 사시는데, 저 때문에 괜히 힘들어지신 게 아닌가 해서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많은 생각이 머리에서 스쳐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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