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 외삼촌은 뭘 믿고 계속 나에게 말씀을 하시는 건지......
새로운 매거진의 첫 번째 글을 적어봅니다.
처음에는 지금 사는 곳이 너무 싫어서 빨리 집을 짓고 서울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계속 '빨리빨리'를 외치다가 '동절기'라는 기간에 걸려서, 공장에서 집을 찍어서 올릴게 아니라면 조금 시간을 두자고 가족끼리 의논이 되어서 지금은 설계를 해나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저는 디자인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직도 이 명제에 대한 이유를 잘 모릅니다.
왜 검정구두에는 하얀 양말을 신으면 안 되는 거지?
물론 저는 하얀 양말을 신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하얀 양말은 오래 신다 보면 점점 색이 빨리 변하는 게 싫어서 항상 양말은 회색 아니면 검은색을 구매해서 신는 편입니다. 다행히 저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들도 하얀 양말을 준 적은 없어요.
저 질문에 대해서 제가 가족들에게 물어봤을 때의 반응은 다 똑같습니다.
정말 몰라?
저는 진짜 모르거든요. 사실 하얀 양말이건 검정 양말이건 다 같은 양말인데, 저의 경우에는 나중에 세탁을 해도 색이 변하는 부분 때문에 피하지만, 집에 하얀 양말 밖에 없어서 신어야 할 상황이라면, 하얀 양말에 구두를 신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저에게 건축사이신 외삼촌은 계속 물음을 던지시고,
평면도를 그려보라고 하십니다.
어제는 그냥 제가 답답해서, 솔직히 미적 감각은 정말 개나 줘버린 저한테 왜 이러시냐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막상 왜 이러신다는 답은 안 하시고 저한테 이런 답만 주시더군요.
그린게 나쁘지 않아.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은 나보다는 네가 낫지 않겠니?
같이 좋은 집 좀 지어보자.
너도 아버지처럼 아이디어가 많으니까 하나만 좀 꺼내서 쓰자.
모든 세상이 동그라미/세모/네모 이외에는 곡선이라고는 수학시간에 배우는 그래프나 3차원 회전체 밖에 모르는 저로서는 그냥 미칠 지경입니다.
그러고서 외삼촌께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가 그린 거나
지금 나랑 같이 하는 건축사들이 그린 평면도나
Calm(가명)이 그린 거나
조금씩 다 애매하니까 일단 해외에도 좀 부탁을 해서 받아보자.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그냥 아무렇게나 해주세요.
예술작품 만드시려고 하세요?
외삼촌께서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너도 내 친척인데, 그래도 좀 괜찮은 집에 살게 해 줘야 할거 아니니?
너도 꼭 너네 엄마 닮아서 그냥 필요한 것만,
요즘 말로 미니멀이라고 하나?
항상 미니멀로 살 수는 없잖아.
어차피 시간이 많으니까 조금 더 생각하고 지혜를 모아보자.
예전에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교수님 한분께서 과제를 다 받으시고 나서 저하고 같이 수업받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Calm(가명)은 분명히 이럴 거다.
'서울시청 신건물을 왜 유리로 다 지어놔서, 여름에 냉방비를 엄청 쓰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이 실용주의라고 하면서 온갖 이유를 다 가져다 대는 것은 많이 봤는데,
쟤처럼 진짜 실용주의로 사는 사람은 내가 세 손가락 안에 꼽겠네.
솔직히 건축물을 봐도 별 감흥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수도권에 살기 전에는 그냥 건물 모양이 특이하다 정도는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냥 저나 우리 가족의 바람은 이것뿐입니다.
일교차나 아니면 실내외 온도차이가 심해도 집 속은 쾌적하고,
냉난방비나 좀 덜 들었으면 좋겠다.
집 속에 방이 몇 개인 것은...... 그럴 일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하도 은행권에서 방 개수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런 거고, 방모양이 네모이던 세모이던 솔직히 우리 가족은 관심이 없어요.
기괴한 평면도라고 나오는 평면도들도 다 사람 살라고 나왔겠거니 싶어서 그냥 보기만 하는 편입니다.
미적 감각이라고는 정말 0에 수렴하는 저에게 무슨 아이디어를 원하시는 건지 지금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외삼촌은 저보다 많이 어른이셔서 저도 농담 이외에는 좀 하기가 어렵기는 합니다.
하여튼 그냥 제목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강한 요즘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지금 백수고, 내 본업은 시험공부를 하는 건데......
그리고 이 집은 내 집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