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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가 좋은 걸

나 자신 그대로 인정하자

by 이레


나는 늘 키가 컸다.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내 뒤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삐죽이 튀어나온 키는 늘 부담스러웠다.

늘 맞는 옷 사이즈를 찾기도 어려웠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마다 으레 언니라 불렀지만 빠른 생이라 학교에 일찍 가게 된 내가 언니일 리가 없었다.

사람을 만나면 으레 묻곤 하는 처음 질문이 대게는 키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었다.

키는 늘 168센티였는데도 좀 더 커 보인다고 170은 되지 않냐고 물어들 보았다.

"이상하게 다들 크게 보는데 170은 안 돼요"...
말하곤 했다.

생각해 보면 2센티 차이인데 6과 7은 너무 큰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고 나만 외따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딸 셋 중 첫째이다.
딸만 셋 있는 집의 첫째는 쓸모없다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듣고 자란다.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첫아들에 대한 기대가 제일 크겠고, 나 이후로 줄줄이 태어난 딸들은 큰 애가 딸이어서 연이어 태어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평범한 외모에 美京이란 평범한 이름을 가졌다.
美 뒤에 올만한 경이라는 한자가 많았을 텐데 서울이라는 한자가 제일 쉬워서 내 이름이 그렇게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개명을 할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딱히 떠오르는 이름도 없었고 나를 아는 이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알려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싶어서 아직도 그냥 그 이름을 쓰고 있다.


갱년기가 시작된 이후로 매번 정기적으로 호르몬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곤 하는데, 한 번은 원장님께서 나의 이름을 물어보셔서 대답해 드린 적이 있었다.

"한자는 어떻게 되나?"
"아름다울 미에 서울 경을 써요."

흔하게 쓰는 경이 아니기에 서울이야?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미스 서울이네~"
"그러네요..."

내 이름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다른 면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간단하게 미스 서울도 되는 거였다.

원장님의 해석을 듣고 집으로 오면서 내내 생각이 났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지 않던 서울은 미스 서울도 되는데 나는 나 스스로를 보는 관점이 따뜻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누군가 나에게 장점이 뭐냐고 물어볼 때 나 스스로 딱히 말해볼 것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이
"키 큰 것도 장점이잖아요..."
마치 그때 같은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엔 손으로 하는 것들을 좋아해서 만들기나 그리기를 종종 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친구들의 칭찬을 들어도 그냥 하는 소리겠거니 생각해 쑥스럽기만 했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서도 신랑이랑 아이들에게 칭찬을 들어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아서 여러 번 되묻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듣는 얘기는
"여러 번 물어볼 필요 없이 잘하니까 자신을 가져."였다.

그날 원장님의 '미스 서울' 그 한마디가 나의 키도, 나의 이름도, 나의 손재주도 나만 너무 나를 아껴주지 못했다는 걸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이미 예전에 알았어야 할 사실이지만 이제는 자주 되뇐다.

"있는 그대로가 좋은 걸"

나라는 사람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에 모두들 있는 그대로를 아껴주라는 얘기를 듣고도 이제야 또 알게 됐지만 이제는 내내 생각하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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