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한해살이
감자수확을 마친 밭에 조금 늦었지만 고구마도 심어보기로 했다.
고구마 순을 심을 고랑을 짐작하여 비닐을 깔아준 후 흙으로 고랑 사이를 메꾸고
고구마가 자랄 간격을 짐작하여 구멍도 내어본다.
고구마 순을 심을 땐 물이 많이 필요하다기에 물도 진즉에 준비해 두었다.
호미로 비닐에 적당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땅을 파고 고구마 순을 꺼내어
옆으로 눕게 한 줄기씩 정성껏 심는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아 과정 하나 하나 번갈아가면서 해야 한다.
한 사람은 파고 한 사람은 줄기를 넣은 후 흙을 올려 야무지게 눌러준다.
심고 난 후 물을 듬뿍 주어야 자리를 잡는다는 말에 물도 흠뻑 적셔준다.
한낮의 해를 피하여 오후 늦게 심기 시작했던 고구마 심기는 한참 정성을 들이고 난 후
끝이 나고 며칠 후 찾은 고구마 밭은 기대만큼 풍성하다.
고구마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올라오는 풍성한 고구마 순을 솎아 고구마순 볶음도 해먹는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고 고구마를 뽑을 때가 찾아왔다.
아이들과 고구마순을 뽑고 주변을 호미로 조심스럽게 파내어 고구마를 캐내기 시작한다.
고구마는 감자처럼 한꺼번에 나오는 재미는 덜하지만 하나씩 나오는 고구마 찾기도 재미지다.
고구마 하나를 캐기 위해 살살 흙을 파내던 나는 힘조절에 살짝 실패해 고구마 하나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하필 그 날 캔 가장 큰 고구마라 큰 애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제일 큰 건데... 부러뜨리면 어떡해...."
미안하다 연신 사과하지만 아이의 토라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나중에 내 아이에게 할머니가 고구마 캘 때
제일 큰 고구마를 부러뜨렸다고 꼭~ 얘기해 줄거야."
아이는 성인이 된 지금도 종종 그때 얘기를 하며 그날의 일을 잊지 않았음을 알려주곤 한다.
김장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 배추랑 무도 심어보기로 한다.
배추모종과 무 씨앗을 심고 잡초도 뽑아주며 수확을 기다린다.
배추는 제법 씨알이 굵어져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시험삼아 뽑아본 배추 하나의 뿌리 쪽이 물러있다.
알고 보니 '배추뿌리혹병' 이라는 병에 걸려 이 상태로는 자라지도 않고
물러져서 뽑아서 먹어야 한단다.
주변 밭에서 제일 크고 실한 우리 배추였는데 뽑아야 하다니 너무나 아깝다.
그렇게 뽑아간 배추는 겉절이를 담그고 곁잎을 떼어내어 시래기를 만들어
배춧국을 끓여 먹기로 한다.
그래도 무는 제법 실하게 자라 땅 위로 올라온 무 밑동의 모습에 흐뭇해 진다.
무를 수확하던 날, 우리는 눈도장을 받았던 무 대신 그 자리에 자리한 구덩이
하나를 발견한다.
누군가 우리 무를 뽑아 갔나보다.
같이 농사짓는 입장에서 도둑질이라니 괘씸하다.
무청은 살짝 데쳐서 시래기로 만들어 놓고 무를 썰어 깍뚜기를 만들어 놓는다.
배추와 무 수확을 끝으로 주말농장에서의 한 해 농사는 끝이 났다.
수확이 끝난 빈 밭을 보며 한 해 동안 우리를 위해 애써 준
우리의 텃밭에게 고맙단 생각도 들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면 아이들 보다는 우리 부부의 기억에 더 남아있지만
같이 부대끼던 그때의 추억은 사는 내내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