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서 - 정아은'을 읽고
금요일 아침 30페이지 정도 남은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마저 다 읽고 리뷰를 써야지 하며.. 읽던 책을 다 읽으면 바로 다음 읽을 책들을 고르곤 한다. 하지만 '엄마의 독서'를 다 읽고 나서는 바로 다음 책을 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금 더 곱씹고 찬찬히 소화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는 순간도 많았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나와 같아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순간도 많았다. 누가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하는 생각들을, 내가 하는 행동을 다 보고 써 내려갔나 하는 생각이 들게 너무나도 내 이야기였다. 이전에 읽었던 '태도의 말들'에서 소개된 책을 보면서 다음 책을 고르다가 이 책 제목을 보았지만, 제목으로는 사실 그렇게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엄마의 독서니 육아서쯤 되려나 생각하며, 읽다 재밌으면 읽고 아니면 말아야지 하면서 펼쳤는데, 나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목에 대해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자극적으로 지었다면 (엄마의 독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난 나에게 당면해 있는 현실을, 이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자라는 것. 아주 깊게 뿌리내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결혼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던 남녀 차별을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사실 아이를 낳고는 바쁘다는 이유로 피하고만 있었고, 들쳐내기 싫었다. 들쳐내는 순간 기분이 좋게 해결될 수는 없는, 투쟁해야만 하기에, 일 더 만들지 말자며 몸을 사려 왔었고, 그렇게 모른 척 살아가고 싶었다. 아이를 갖기 전엔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고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남녀 차별이냐며 민감하게 반응하던 나는 더 이상 없었고, 그냥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저 깊은 곳에 처박아 두었던 사실들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내게 되었다.
한편으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안심하기도 하고, 아직도 이렇게 남녀 차별이 심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 분노하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인 다른 사람의 힘겨움을 보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정아은 작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풀어냈지만, 그 이야기는 너무나도 나의 이야기였고,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과 생활이 똑같아서 동질감을 느껴 안심과 안타까움을 모두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결혼한 사람의 반(여자 남자 중에 여자는)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건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런 의식변화가 없는 것이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모성애와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성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엄마들의 그 작은 어깨를 짓누르게 만들었고, 그 짓눌림을 느끼면서도 차마 힘들다는 말을 못 하게 입을 틀어막아 버리는 사람들의 인식과 이 사회 시스템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 옆에서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여자라는 사회 인식과 짐은 없기에 나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역시 이전 시대와는 많이 다른 이 사회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이 보였다.
제도와 정책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때,
그 모순과 갈등은 온전히 사회 구성원들에게 돌아간다.
...
남편과 나는 남자와 여자라는 각자의 젠더를 뒤집어쓴 채,
한참 뒤처져 쫓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 사회제도와 투쟁하면서
힘겹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엄마라는 자리가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사실 힘들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나는 내 아이 하나 키우는 걸 힘들어하는 자질이 없는 엄마로 치부되기에 내 입 밖으로 꺼낼 생각도 안 했었고, 내 스스로가 힘들다고 인식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감정 기복이 심해진 사람으로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면서 살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할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됐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시작을 안 하면 되었다. 감정이 끝까지 떨어져야 할 일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서는 선택권이 나에겐 없었다.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커리어와 가족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가족을 선택하곤 한다. 괜찮지 않은 나의 마음을 괜찮다고 계속 다독이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다독여보지만 끝끝내 터져 나오는 화를 보면서 나 자신이 싫었다. '이렇게까지 후회할 거면 처음부터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지 나는 왜 그렇게 선택하고 엄한 곳에 화를 터트리는 것일까'라며 끝없이 자책했었다. 그 생각을 지우려고 숱하게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튀어나와서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그 이유들이 조금 이 책을 읽으며 보였다.
정아은 작가도 몇 가지의 책을 통해 자신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알았다고 해서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어쩔 땐 그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오히려 괴로워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기 전이, 몰랐을 때 가 차라리 더 편했다며 괴로워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알게 된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에 엄마가 된 지 14년 만에 드디어 본인이 어디에 서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잘 나아갈 것이라고..
이 책을 통해 나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많은 사실들을 아는 것이 불편하고 무서워서 눈 감고 살았던 나날들도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변하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알아야 나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더 나은 나를 그리고 나의 가족을 위해 앞으로 더 알아가고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정확히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