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고
토요일 새벽 5시 눈이 떠졌다. 조금 더 자고 싶은 생각에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몸을 뒤척여봤다. 잠이 다시 오지는 않았고, 어제 10시에 자려고 누웠으니 충분히 잤다 생각하면서 방을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불을 켜려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뭐지? 하며 마루로 나가 불을 켜보았지만, 이곳도 역시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라! 하며 이곳저곳을 다 켜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정전이었다. 밖을 보니 눈이 오고 있었고, 우리 집뿐 아니라 주변에 여러 집이 정전이 된 듯 어두컴컴했다.
전화를 걸어서 정전사실을 알리니, 내가 사는 일대가 그렇다고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하겠지만 언제 들어올지는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미국에선 눈이 많이 오면 나무에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기가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이 정전이 된 건 처음이었다. 캠핑을 할 때 사용하던 랜턴이 생각나서 그걸 찾아서 켜고, 냉동실을 열어 녹았을 때 문제가 될만한 음식이 있는지만 간단히 확인을 하고는 소파에 가서 랜턴을 옆에 두고 앉았다.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고, 불까지 꺼진 상태라 모든 것이 더 조용한 느낌이었다. 가끔씩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렸다. 가만히 밖을 잠시 내다보다가 요가를 30분 하고 책을 30분 읽고 나니 남편이 일어나서 나왔다. 조금씩 해가 뜨면서 밖은 밝아오고 있었다. 샤워를 하려는 남편에게 불이 필요한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랜턴을 내어주었다.
가스레인지도 전기가 없으니 사용할 수가 없었고, 인터넷도 당연히 안되었고, 히터도 당연히 안되었다. 전기가 없으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제한이 많았다. 토요일 아침마다 아들을 한글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들을 데려다주러 나가야 했다. 준비를 하고 (뜨거운 물은 잘 나와서 다행) 데울 필요 없는 음식들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다 같이 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가라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전기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기 때문에, 차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우버를 불렀고, 그렇게 모두 아들 한글학교 있는 곳으로 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들에게 정전이 되어서 어떻냐고 물어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정전이기에 나와는 느끼는 점이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였다. 내가 어릴 때 정전이 되는 날들이 꽤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집집마다 초를 준비해 뒀었고, 정전이 되면 초를 몇 개 켜서 집안을 밝히곤 했다. 그 시절에는 정전이 되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온듯한 생각과 형광등불이 아닌 촛불을 통해 보는 주변이 그저 재밌기만 했었다. 초를 켜두면 엄마는 계속해서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지만, 초를 내가 들고 싶어서 계속 달라고 보챘다. 그럴 때면 엄마는 촛농이 손으로 떨어지지 않게 종이컵에 잘 끼워서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한번 하시고 나에게 초를 주셨고, 나는 촛불하나 들고 있는 것이 모든 빛의 근원을 빛의 에너지를 내가 들고 있느냐 신나기만 했었다. 정전이 자주 일어났던 그 시절이 그때 살던 집이 그 공간이 문뜩 떠올랐다.
아들은 계단 부분은 빛이 들어오질 않기 때문에 너무 어두워서 그곳을 지나가야 할 때는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재밌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헤드라이트를 껴고, 어둠 속에서 그 빛에 의지해서 발을 옮기는 게 재밌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들은 조금은 재밌기도 했지만 거긴 정말 무서웠다고 재차 대답했다. 아들이 살면서 재미를 어디에서든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요즘은 내가 얼마나 재미없게 살고 있었는지,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않았던 내가 보였다.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도 재미를 찾기보다는 책임감과 오늘 다 끝내겠다는 마음에 웃음기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어제 읽었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시인의 책에서 '지루하게 살지 말라고 속삭였는데 듣지 않았다'라는 챕터에서는 경건하고 독실하게 살며 매일 다섯 시간씩 기도한 사람이 죽어 신앞에 가서 자기 인생이 왜 이리 힘들었는지 따지자, 신이 말한다. "그대가 재미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매일 다섯 시간씩 그대의 기도를 듣느라 나도 지겨웠어. 지루하게 살지 말라고 내가 그토록 속삭였는데 듣지 않았어."라고..
재미를 찾으려고 하니 모든 게 재미다. 정전이 된 그 컴컴했던 집도, 가라지가 열리지 않아서 우버를 타고 가야 했던 상황도 재밌다고 생각하면 재밌는 상황이 된다. '정전이 돼서 이게 무슨 꼴이람,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차도 못 사용하고', 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면, 그 상황은 그저 불편하고 답답한 순간이 되어버린다. 모든 건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내 마음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라서 헤매곤 했다. 재미를 찾으려고 했더니 꼬인 밧줄의 끝이 보였다. 그 끝을 잡고 하나하나 꼬인 밧줄을 풀어가자 정리되지 않던 마음이 조금은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가끔은 너무 쉽게 해결책을 찾곤 한다. 사실 언제나 쉬웠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데서 찾으려고 헤맸었고, 없다며 실망하며 주저앉았을 뿐이다.
한글학교 수업은 3시간 동안 하기 때문에 남편이랑 나는 근처 카페로 가서 각자 할 일을 좀 하고, 3시간 뒤에 아들을 픽업해서 다시 우버를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메일을 확인한 남편이 전기가 이제 들어온다는 사실을 전했다. 집에 들어와서 히터를 다시 켜고, 따뜻한 요리를 해서 먹으며 다 같이 영화를 봤다. 저녁엔 아들과 주황색 고무총알이 나가는 총을 가지고 총싸움을 했다. "엄마는 총싸움 하는 거 싫어, 너도 안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만 하며 매번 하지 못하게 했지만, 오늘은 아들과 경계선을 그어놓고 해 봤다. 생각보다 더 재밌어서 모자란 총알 100개를 더 주문했다.
이건 이런 재미가 있네 라는 생각만 해도 인생이 참 재밌어진다. 그 재미를 잊고 심각하게만 살아왔나 보다. 내 나이, 내 사회적 위치, 내 할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나에게 재밌는 일을 한 개라도 찾는다면, 많은 게 바뀐다. 그걸 잊고, 모르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