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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Jan 24. 2024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에는 마셔야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를 읽고


그런 날들이 있다. 마음이 답답하니 꽉 막힌듯한 기분이 드는 날. 무얼 읽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읽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답답한 이 마음이 계속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 저 책을 계속해서 골랐다. 책을 골라 1,2장 읽고 다른 책을 골라 1,2장 읽고를 반복했지만, 읽을 책을 고르지 못하다가,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조금 읽어보고 아니면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장을 읽었다. 한 장을 읽고, 두 장을 읽다 보니 어느새 몇십 장을 넘기고 있었다. 피식피식 웃기도,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숨이 나오기도,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리고 주방으로 걸어가 와인을 한잔 따라 가지고 나왔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기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유명해진 정지아 작가를 이 책을 읽는 동안 찾아봤다. 65년생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고, 산과 술을 좋아한다. 그 세월을 보여주듯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60,7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인 걸까? 주변 지인들의 죽음도 경험하게 되고, 아프게 된 사람들도 생긴다. 한 사람의 경험담을, 과거에 대한 추억 혹은 회상은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을 나에게도 안겨주었다. 

작년 많은 책을 읽었다 생각했지만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읽으며 나는 여태껏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작가들의 책만 읽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과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즐겨 읽었었다. 그래서 정지아 작가의 에세이는 생소한 부분들도 많았고, 내가 모르던 세상을 조금 더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나보다 어른이 말하는 듯한 말투를 글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어서 글을 읽다가 작가의 나이를 알고 오히려 놀랐다. (나와 비슷한 나이겠거니 했는데, 이야기가 60,70년대여서 뭐지 하면서 나이를 찾아본 것이었다.)


어떤 에피소드(하나하나의 사건을 기준으로 작성한 글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 같다. 뭔가 시트콤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에피소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너무나도 재밌어서 보면서 엄지 척을 해 보이기도 했고, 어떤 에피소드는 저자의 혹은 저자의 지인이 처한 상황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나도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저렇게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란 생각도 들었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 사연이 있다. 그걸 뭐로든 풀어가는 사람이 있고, 기억하거나, 추억하거나, 애도하지 않고 그저 흘려버리고 마는 사람도 많다 (사실 이런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언젠가 나의 엄마 아빠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지?라는 생각에 엄마 아빠를 인터뷰해 보고 싶단 생각을 한 것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엄마 아빠의 과거는 너무 단편적인 부분뿐이라(심지어 내가 같이 살던 시절조차 내가 엄마 아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 아빠에 대해 더 알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걸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나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나를 알고자 하는 부분이 컸다. 분명 내 생각을 쓰는 것이 글임에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처음 생각과 다른 곳에 와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정지아 작가의 회고록 같은 이 글들이 술 한 잔을 불러왔고, 나의 과거를 떠올려보게 했다. 나는 과연 잘 살았을까? 내가 나의 이야기를 풀어쓴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밤이다. 홀짝홀짝 와인을 들이켠다. 


산은 우리의 본성을 드러나게 하고,
술도 그러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허물을 덮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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