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래에서 물이 왈칵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이게 양수인지 아닌지도 확실치가 않아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샤워하지 말고 바로 오라는 말을 듣고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간단히 확인하더니 양수 터진 게 맞다며 오늘이나 내일 출산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직 3주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출산가방이니 뭐니 준비해 놓은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선물 받았던 옷이랑 배냇저고리도 아직 빨아두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엔 산후조리원이 없다 보니 퇴원하고 바로 집으로 와야 하는데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선 잠시 집에 갔다가 진통이 있으면 바로 오고 진통이 없으면 저녁 9시쯤까지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바로 입원을 시킨다는데, 아무것도 모르니 나와 남편은 시키는 대로 병원을 나섰고 가방쌀시간을 벌었다며 좋아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 가서 기저귀랑 물티슈, 젖병 등등 당장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마구 구매하고는 집으로 와서 아기 옷과 수건들을 빨았다.
저녁이 되도록 진통은 오지 않아서 임신 중 마지막 저녁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두렵기도 하면서 설렜고, 걱정이 들면서도 기대감이 생겼다. 초음파로만 보던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며 설렜고, 진통은 얼마나 아플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소속을 마치고 안내해 주는 병실로 가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남편과 마지막 임신 중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 기계들이 차례로 들어왔고 내 몸에도 여러 선들을 연결하고 주삿바늘이 꽂혔다. 그리고 유도분만제가 투여되었다. 나에게 유도분만제를 꽂아주던 간호사는 자신은 이제 퇴근하고(이때가 거의 자정이 다 되었던 거 같다.) 내일 오후 3시에 출근하는데 그전까지 아이를 낳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하고 퇴근했다.
유도분만제가 잘 들기 위해선 걷는 게 도움 된다고 해서 남편과 같이 병실 복도를 잠시 걷기도 했는데 유도분만제를 맞기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무통주사에 대한 ‘카더라’를 너무 많이 듣고 갔던 터라 진통이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무통주사를 맞기엔 좋지 않은 타이밍이니 그 중간 어디쯤에서 무통을 맞아야 한다는데 그 중간이 어디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맞을까? 하며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보자는 생각을 한지 얼마 안 가서 진통이 세게 오기 시작했다. 무통주사를 맞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새벽시간이라 마취과의사는 한 명뿐이었고 이미 그 의사는 다른 산모에게 무통주사를 주고 있다며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점점 진통의 세기는 강해져서 무통주사를 맞기 위한 포즈를 취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고, 나는 무통주사 없이 출산을 하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진통을 한 지 1시간 반정도만에 아이 머리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급히 의사를 호출했고, 힘을 팔다리가 아닌 배에 줘보라고 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면 힘이 분산된다고 배로 모으라는 것이었다. ‘그걸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몸은 배에 힘을 주는 방법을 찾아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한 번만 세게 힘을 주어선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세게 힘을 연속해서 세 번을 줬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내 가슴에 올려졌고 간호사들은 아이에게 젖을 물게 했다. 처음에 나는 힘들어 눈도 못 뜨고 있다가 내 배 위에 올려진 아이에게서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과, 작은 무게감, 싸름 한 피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렇게 아이를 처음 만났고, 생각보다 작은 아이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