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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Sep 26. 2024

동갑내기 친구

잘 지내지?

6살쯤 살던 아파트 아랫집으로 동갑내기 남자아이가 이사 왔다. 생일도 딱 하루차이! 엄마들끼리도 신기해했고, 성향도 비슷했던 우리 둘은 금방 친해졌고 서로의 집을 자주 왔다 갔다 했다.


같은 유치원을 다니지는 않아서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함께  놀았는데, 그 친구는 특히 만화 비디오를 보는 걸 좋아했었다. 친구네 집엔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는 날이면 우리 집으로 달려와 함께 비디오를 봤었다.


그러다 대망의 날이 다가왔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 친구는 엄마의 손을 잡고 고래를 잡으러 다녀왔고, 퉁퉁 부은 눈과 코를 훌쩍거리며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들고 우리 집에 왔었다. 친구네 엄마가 가기 전에 우리 엄마에게 다녀오면 비디오를 좀 보여달라는 말을 했었고, 친구가 오기 전에 엄마는 나에게 친구를 오늘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알겠다고 답을 했다.


친구는 바지 안에 종이컵을 끼워 바지 앞부분이 불룩해 불편해했지만, 그 나이의 아이답게 비디오가 시작되자 만화에 정신이 팔려 깔깔거리며 만화를 봤었다. 며칠 더 친구는 걷는 걸 어려워했지만 며칠 지나고는 멀쩡히 잘 뛰어다녔었다.


겨울이 다가왔고,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산타복장을 한 선생님이 집마다 방문하며 선물을 하나씩 주셨는데, 우리 집에서 같이 놀고 있던 친구도 선물을 함께 받고는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이제 곧 3월이 다가오고 있었고, 2월생이었던 우리 둘은 같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를 입학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네 집이 조만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친구와 놀 때면 우리는 놀다가 한 번씩 미국이라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친구는 내가 학교를 입학하고 나서인지 입학하기 전이었는지, 어느 날 미국으로 떠났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한 번인가 연락이 왔을 때 영어를 배우는데 애를 먹고 있고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인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네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부쩍 커버린 우리는 처음엔 서로에게 말도 못 붙이고 어색해하기 바빴다. 거기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어가 편하지 않은 아이로 자라 버린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엄마에게 우유를 달라고 말할 때 굴러가는 '미~일~크'라는 발음을 듣고 우리는 그제야 웃으며 우리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단어를 따라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은 서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당시엔 SNS 도 없고, 이메일이라는 것도 없고, 전화비도 비싸던 때라, 친구네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전화할게라는 말을 하며 돌아섰고, 우리는 친구네가 시야에서 안 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지키고 서 있었다.


몇 번인가 엄마와 그 친구의 엄마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연락은 점점 뜸해졌고, 이제는 서로의 소식을 전할 길이 없게 되었고,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오늘 그 친구가 불쑥 내 머릿속을 방문했다.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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