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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날자 Sep 14. 2024

걷다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나이로

무의식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내듯..

'길을 걷다'라는 단어를 생각하다 길이나 걷다에 대한 여러 노래들이 떠올랐다. 옛날 노래들로는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리고는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떠올랐다.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는 아빠가 특히 좋아해서 아빠랑 음반가게에 가서 테이프를 사 왔던 기억도 난다. 아빠가 좋아하시니 같이 자주 들었었고, 나도 자주 흥얼거리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가 떠오르면 아빠가 항상 함께 떠오른다. 아빠는 이 노래가 왜 좋았을까? 어떤 생각이 들어 이 노래가 좋았을까? 슬쩍 궁금해진다.


그냥 걸었어의 노래가사는 비 오는 날 그냥 걷다 보니 예전 여자친구네 집 앞이었고, 예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그냥 걷다 보니 너네 집 앞인데 “그냥 갈까?”라고 말하며 밖으로 불러내는 내용이다. 어찌 깨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갈까?”라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니 나올 것이라 예상을 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보통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법이니 말이다.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은 밝은 목소리와 경쾌한 반주가 듣는 동안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울적할 때 걷는 건 국룰이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요즘 노래로는 며칠 전에 들었던 노래였는데,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길 잃었다"라는 가사 하나만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며칠 전에 들었던 음이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일을 하면서 틀어놓았던 노래들이었기 때문에 의식하고 듣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가사도 모르고, 듣던 당시에는 나의 주의를 끌만한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문득 떠오르는 음과 가사가 있고, 나중에 찾아보면 대부분 내가 좋아할 음악들이다. 내 의식은 안 듣고 있었는데, 무의식은 듣고 있다가 불현듯 나에게 알려준다. 네가 좋아할 음악을 내가 찾았는데 들어보라면서..


악동뮤지션 노래를 틀어놨던 중에 나왔던 노래였기에, "악동뮤지션, 길 잃었다"를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이라는 노래로 빅나티라는 가수의 노래였다. 음은 차분하고 슬폈고, 노래 같다는 느낌보다는 단조로운 G 단조로 읊조리듯이 속삭이는 가사였다. 음악을 틀고 가사를 읽기 시작했고, 가사를 읽으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는 빅나티라는 가수를 찾아봤다. 2003년생! What!!!!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지? 스무 살일 때 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가? 알아차리기나 했을까? 느끼기는 했어도 말로 표현하거나 알아차리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이런 감각은 어떻게 갖게 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한 가지에 대한 궁금증과 관찰이 이런 가사를 만들었을까? 믿었던 것들을 반대로 생각하고 깨달으며 결국엔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추억일 뿐

추억이라 믿었던 것들은 오래 썩는 기억일 뿐

기억이라 믿었던 것들은 지금 나와 나의 기쁨

(기쁨이라 믿었던 것들은) 깊은 곳에서 숨 쉬는 불행들의 연료일 뿐

불행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상처일 뿐

상처라 믿었던 것들은 새로운 살의 양분일 뿐

새살이라 믿었던 것들은 의미 없는 가죽일 뿐

그 살가죽을 뚫고 온 너를 사랑이라 믿었을 뿐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 빅 나티>




가끔 갓 스무 살이 되었지만 성숙한 사람들을 보면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사람 중에 한 명은 배드민턴선수인 안세영이다. 2002년생으로 22살. 협회를 상대로 할 말을 하고자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협회를 폭로했다. 뉴스에선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안세영이란 이름이 흘러나왔고, 응원하는 목소리도, 잔칫집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언니와 안세영에 대해서 얘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왔던 말은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럴 수가 있지? 였다. 22살 때 우리는 누가 뭐라고만 하면 팽! 하고 울기나 했지, 할 말을 한다는 게 뭔지도, 그게 가능한지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한참 들어 옆에서 누가 찌르면 꿈틀거리고, 발끈하기도 하며, 나와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자세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할 말을 못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어쩔 땐 더러워서, 어쩔 땐 무서워서 돌아가거나 피하거나 못 본척한다. 난 여전히 이런데 어린 나이에 큰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절로든다.  이런 걸 보면 나이라고 하는 건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게 맞는 거 같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나이에 집착해 가는데, 정작 해야 할 바를 하는 사람들은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일을? 나이를 허투루 먹었나? 그 나이 먹도록 왜 저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자주 생각하는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야 할 것 같다. 언어에서 이미 나이를 들어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말 때문에 나이를 빼고 생각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모두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좀 더 어린 나이에 할 수 있고, 누구는 평생 가도 못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같은 걸 할 필요도 없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많은 걸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나잇값 못하는 사람을 보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사진: UnsplashGoashap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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