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여차저차 잘 흘러간다.
9월 5일. 오랜만에 비가 왔다.
이번 여름의 8월, 그 한 달 동안 친정에 머물렀다.
아빠가 부재하는 집에 남겨질 엄마와 동생이 걱정된다는 이유였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은 나 스스로였다. 마음속 무언가가 정리되지도 않은 채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슬픔은 아물지 않은 채 어딘가에 둥둥 떠다닐 것 같았고, 아빠의 흔적은 내게서 바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아빠를 흔적을 될 수 있는 대로 질질 끌고 싶었고 추억하고 싶었고 기억하고 싶었다.
다행히 한 달 동안은 친정에 머물며 아빠를 매일 맘껏 추억할 수 있었다. 이곳 모든 것에는 아빠의 흔적이 있었다. 아빠가 앉아 있던 식탁 의자, 아빠가 누워서 티비 보시던 소파, 내가 친정에서 머물던 안방, 아직도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갑 서랍 등.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엄마와 우리 네 딸이 함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밤낮으로 아빠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빠 얘기를 하고 있으면 왠지 아빠가 희미해지지 않았고, 오랜 출장을 떠나셔서 아직 안 오시는 느낌이었다. 곧 돌아오실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아빠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문제는 내가 이곳에 언제까지 머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가야 할 가정이 있고, 시댁도 있었다. 물론 남편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사랑하지만- 이곳에 남아 엄마 언니들과 동생과 함께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무작정 남은 육아휴직 세 달 동안 이곳에 지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남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늘 내 의견을 존중해주고 들어주는 남편이 이번에는 정확하게 반대 의견을 대답했다. 한 달까지는 괜찮지만, 이후로는 너도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이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어제까지 건강하시던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떻게 혼자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철없는 생각이었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누구보다도 내가 그 슬픔을 함께 공유해야 할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을 두고 친정에 머물겠다는 생각은 참 이상한 어리광이었다. 늘 남편과 가정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던 우리 아빠도 원치 않으셨을 텐데 말이다. 이렇든 저렇든, 나는 다시 내가 있던 삶으로 돌아왔다.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그 밤에, 침대에 누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 남편이 조용히 등을 감싸 주었다. 나는 집을 아무리 돌아봐도 아빠를 추억할 만한 것들이 하나도 없다며 펑펑 울었다. 장례식장 이후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던 것 같다.
그다음 날부터 자연스럽게 8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비가 오랜만에 많이 온다. 내일모레 첫 돌을 맞이할 어린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서는 남편과 함께 비가 어울리는 동네 카페를 찾아 자리했다.
늘 그래 왔던 것과 같이 비 오는 날이기 때문에 일기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