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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이라는 개념에 관하여

위선과 도덕자본이라는 개념에 대한 간단한 고찰

by 글쟁이

조국 사태 이후부터 등장한 '위선'이라는 용어는 지금까지도 더불어민주당의 도덕성을 비판할 때마다 종종 쓰이고는 한다. 더 나아가 "위선보다 순수 악이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 '위선'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가 되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위선'이라는 것은 사전을 보면 "겉으로만 착한 척을 한다."는 의미로 나온다. 여기에 빗대어 설명하면 민주당은 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조국 사태가 벌어진 이후부터 '위선'이라는 단어는 '내로남불'과 함께 일반화되었다.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민주당 사람들을 믿었지만, 알고 보니 겉으로는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말만 하고 뒤로는 입시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2019년 이후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문이 있다. 위선이라는 것이 과연 순수 악이 낫다고 할 정도로 거악일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여전히 필자는 위선이라는 것은 순수 악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겉으로만 착한 척을 하더라도, 과정은 논란이 있을지라도 어찌 되었든 결과가 선이라는 것이 나오면 이것도 선에 가깝다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생각만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살았던 플라톤은 자신의 책인 『국가』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스크린샷_10-10-2024_23361_terms.naver.com.jpeg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정의를 다루었다. 이 책에서 위선과 관련한 대화가 있어 주목된다. <사진 및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두산 백과 캡처>


이 책의 2권에서 글라우콘이라는 사람은 정의는 스스로가 아니라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다. 즉, 마지못해서 한다는 것은 평판과 이익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위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그 속에는 이익과 평판을 위해서라는 나쁜 면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여전히 이것도 선이라고 이야기한다. 플라톤의 요점은 간단하다. "어찌 되었든" 그거도 정의 곧 선을 행한 것이 아니겠는가?


잠시 18~19세기의 서구 유럽으로 올라가 보자. 영국에서는 이 시기에 노예무역을 폐지해야 한다는 갑론을박이 있었고, 미국에서도 노예제 문제로 인한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까지 일어난 격동의 역사가 있었다. 사실 이 노예무역 폐지와 링컨의 노예 해방도 자세히 보면 자본가의 이득이라는 면이 들어간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야 산업혁명이라는 구호에 맞게 이들을 노동자로 쓸 수 있고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도 어떻게 보면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도덕자본'이라는 용어가 있다. 도덕도 자본이라는 것인데 이 위선도 도덕이라는 자본을 형성하기 때문에 플라톤 식의 주장대로라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대해서는 비판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노예 해방과 노예무역 폐지도 마찬가지다. 그 의도가 어찌 되었든 흑인 노예의 해방은 지금까지도 도덕자본을 받았고 그 결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과정이 시시비비를 떠나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무언가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선이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플라톤식의 주장은 지금의 세태에 비추어 여러 생각을 들게 만든다. 성악설에서 보면 플라톤의 이야기는 타당하지 않지만 성선설의 입장에서는 플라톤의 이야기는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지금 단계에서는 개인적으로 플라톤의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라는 개념, 선이라는 개념은 철학에서 여전히 논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정의와 선에 대한 논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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