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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킴 Sep 12. 2024

쌍둥이불꽃이 전생에
헤어진 이유는 2

1.남자의 이야기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여자 뿐 아니라, 그 어떤 여자도 스쳐가는 인연이 아닌 여자는 없었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아직 싱글인 걸 보면 말이다. 확실히...그 어떤 여자도 내 마음속 어떤 갈증을 채워주진 못했다. 애초에 나부터가 그 어떤 여자에게도, 나의 곁을 온전히 주기란 어려운 인간이기도 했다. 꽤 오랜 기간 사귀었던 여자에게도 어딘가 모르게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꺼내보이기란 어려웠고...도대체 나의 그 ‘모든 것’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으나, 뭔가 모르게 완벽히 솔직했다거나, 그 연애에 완벽히 몰입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언제나 한 발쯤 걸쳐두고, 어떤 여자를 통해 나의 외로움을 달래었지만, 다른 한 쪽 발은 언제라도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쪽 발 중에, 밖으로 슬그머니 빼 두었던 나의 발 한쪽에는 무게가 항상 조금 더 실려 있었던 것 같다. 애써 나를 붙들던 그녀의 힘이 점점 빠져갈 무렵, 나는 여자1, 여자2, 여자3.....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항상 도망칠 준비를 했었고, 그랬기에 마음 한 켠에는 항상 그녀에게 뭔가 미안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역시도 나는 비겁한 자였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내 마음의 공허함에 대한 자기연민에 빠져 있던 시간이 훨씬, 압도적으로 많았었다. 


 나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 채, 꽤 오랜 스무 살의 연애가 끝이 났다. 그녀였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나는 여전한 공허함을 가슴에 품은 채 –아니 예전보다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헤매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 공허함은 계속해서 또 다른 공허함을 출산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거의 확실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스무 살의 그녀와 헤어진 이후, 나도 다시 연애란 것을 하려고 하긴 했었다. 지금이야, 내 마음속 구멍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인 편이지만 젊은 날의 나는 그 구멍을 매워 줄 누군가를 찾아 하염없이 헤맸다. 말이 좋아 헤맸다는 것이지....이 사람 저 사람을 전전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게 이 여자일까, 이번에는 네가 바로 그 사람이 맞을 거야, 하고 매달린 적도 있었지만 매번 착각이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말도 안 되는 이별을 맞았었다. 그러면서 관계란 것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다.


 말수는 원래도 적은 편이었다. 관계를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인간이기도 했다. 원래부터도. 젊은 날에는 혈기를 못 이겨서, 그냥 어쩌다가, 호기심으로, 혹은 상대방이 매달려서라도 관계라는 것을 이어 가 보기도 했지만 글쎄,  거듭된 이별로 어차피 모든 관계는 끊기려고 만나는 거 아닐까, 란 생각이 든 후부터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더더욱 두려워졌다.


 처음에는 여자들 탓도 했다. 나쁜 년들. 배신자들. 따지고 보면 평범한 이별 스토리다. 그녀들과 나 사이에 연결된 끈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떠난 것은 그녀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안다. 그냥 내 탓인거다. 나는 어찌 보면 관계 맺기에 있어서는 장애인이다. 언제부터인가는 어쩌다 맺은 관계도 채 석 달을 못 가는 것이다. 나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곁을 완전히 주기가 힘이 든다. 무섭다. 아니 언젠가부터는 무섭다는 기분이 들기도 전부터 관계맺기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도망친 적이 헤아릴수도 없다. 

 사실 내가생각하기에 그간의 이별에는 매번 너무도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성격이 드세서, 생긴게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뱃살이 많아서, 가슴이 작아서, 섹시하지 않아서 등등. 그러나 수없는 여자를 스치는 동안, 매번 헤어져야만 할 너무도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한 흠 하나 없는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주변의 형들, 일찍 결혼한 동생들도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여자들의 말도 안되는 것들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되려 그게 즐거워보이기까지 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갔지만. 


 어쨌거나..하나 하나 따져보면 그 여자들 나름대로 괜찮은 여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인내심을 잃었고, 헤어지기에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는데 선수가 되었고, 이별의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사실 이별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기 보다는.....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저 도망을 친 것이다. 


왜 도망쳤는지-그땐 그냥 뭔가 귀찮았다고만 생각했었다- 이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조차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모든 여자들에게서 귀신같이 찾아내었던, 헤어져야만 할 이유, 혹은 관계를 더 깊이 진전하지 않아야 할 이유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여자로부터 이렇게나 도망치고 있는 데에는 말이다. 


 그것은 일종의....근원적인 공포감에 가깝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인지했다. 사랑에 대한 불신, 관계맺음에 대한 공포감.연애만 하면 올라오는,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알 수 없는 적대감.-이것이 적대감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감정임을 알아챈 것도 최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성관계로 엮이지 않은 대부분의 여자들과는 사실 그닥 문제 없이 잘 지내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에 대한 원인을 찾을 때 어린시절을 되돌아본다.나 또한 나의 어린시절을 복기해보았다. 나는? 가정환경이 불행했던가? 부모님은 바빴다. 해서 늘 혼자였다. 그뿐이다. 한 살 터울의 동생도 나랑 똑같이 컸다. 녀석은 나랑은 달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근원적인 외로움이랄까, 그런 것들이 그 녀석에겐 없었다. 


 내가 외로워 할 틈에 녀석은 밖에 나가 축구를 찼다. 나의 외로움의 원인으로 애먼 부모를 원망하며 그들과 등을 지고 있을 때, 녀석은 부지런히도 부모와 내 사이를 오가며 다리를 놓았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던 녀석은 일찌감찌 연애하고 결혼해 가장이 되었다. 그런걸 보면... 내가 관계에 있어 장애인인 이유는 부모 탓이라고도 할 수도 없다. 나는 이제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해서, 원망하기를 멈췄다. 부모를 원망했던 세월이 미안해서 죽도록 공부하고 일만 했다. 돈 버는 기계처럼 그저 살았다. 뭐라도 이루어 놓으면, 이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질까. 이 근원 모를 갈증이 사라질 수 있으려나. 이 정처 없는 우울함. 그 누군가에게도 나를 온전히 드러내보이기 어려운 나만의 견고한 벽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해서였다. 열심히도 살았었다. 의지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촌음을 아껴 살았다. 온 몸을 갈아서 살았다. 그렇게 답 모를 물음표를 묻어둔 채, 행여나 그것이 떠오를새라 더욱 바쁘게 살았다. 그게 영 헛되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인간사에서 선호되는 많은 것들을 이루었으니. 누군가가 날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이 정도면 많이 이루었지.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하나 할 것도 없는 상태다. 그래봤자 어쩔 수 없다. 여전히, 나는 혼자이고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여전하다.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건강문제를 호소한다지. 먹고살만해져서 그렇단다. 나도 그렇다. 바쁘게 미친 듯이 많은걸 이루고 난 후, 나는 더욱 공허하다. 성취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으나 마음 한켠의 무거운 물음표가 족쇄처럼 내 인생의 다음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뭘 더 이루어야 하나? 돈을 더 벌면 되는 걸까. 몇 년동안 묻어두었던, 모른 척 했던 문제들을 이제는 외면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한켠에 치워 두고, 미뤄 두고, 보기 싫어 덮어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습격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헬스장에 가서 미친 듯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다. 개운하다. 기분이 한결 낫다. 이렇게 잠깐 좋아진 기분으로, 나는 운동을 했으니 그저 잘 살고 있다고 자위하며 또 꽁꽁 묶어둔 고민에 대한 답을 지연시킨다. 나는 모르는 척 하는데에는 선수이니까.


 그리고 또 괜찮은 차를 타고 출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바쁘게 일을 하고, 퇴근해서는 어떤 생각도 할 틈이 없이 그렇게 쓰러져 잠이 들고, 또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출근을 한다. 


 동생녀석은 얼마 전 말랑한 조카를 낳았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아기의 발을 손에 쥐고서, 전에 없던 애정이 마음에서 뜨겁게 솟았다. 혈육을 만든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한편으로 더 강하게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곁을 줄 수 없는 장애인이다. 나는 병신이다. 


 그러고 보면...이 여자가 –자신이 나의 쌍둥이불꽃이라 주장하는 -  말하는 것 같은 영혼의 단짝...같은 것을 나는 찾아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어느 때가 되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내 영혼의 결핍감을 완벽히 채워 줄 그녀가 있을 거라고....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게...이 여자라고?거기다가, 태초에 한 몸이었다고? 그녀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은 다른데? 그렇다면 전생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이 여자가 말하는 것은 전생이 아니고 심지어 지구에 오기 전의 영혼적인 상태를 말한단다. 이 무슨 개소리일까. 아니, 도무지 태초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도대체가 이 여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미친걸까? 아니면 사이비 종교인건가? 헌금이라도 내게 하려고? 어림없지. 나는 무신론자다. 나는 완벽히 자연과학을 사랑하는 인간이란 말이다. 


 다 집어치우고, 이 여자는 도대체가, 도무지 내 타입이 아니다. 잠깐의 이끌림? 젊은 날 여자에게 그 정도로 끌리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내가 아무리 관계 장애가 있다지만 이 여자는 도무지가 곁에 오래 두고 싶은 타입은 아니다(뭔가 모르게 가까이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러나 매번 그러했듯, 나는 이번에도 이 여자의 말에 완전히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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