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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a Sep 12. 2024

오락가락 하는 삶을 멈추게된 비결은


 

빚만 갚고 살 수는 없으니까

 코로나 이후로 빚을 졌다. 그때즈음에는 나 뿐만이 아니라 소상공인 대부분이 코로나 시절  받았던 대출들의 원금 상환일이 도래하는 시기였었다. 계속 빚을 내서 돌려막았었기 때문에, 원금 상환일이 도래하니, 갑자기 한달에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생겨버렸다.


 빚진 금액 자체가 1억원 남짓이었기 총 상환 금액은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매달 상환해야 할 금액들이 턱밑까지 다가왔던 시기였다. 아마 그대로 갔으면 신용불량자는 피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신용불량까지 가기에는 좀 억울하고도 애매한 금액이기도 했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꽤 긴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나라에서는 코로나시기 대출을 받았던 소상공인에 한정해 상환 기간을 늘려주었다. 그래서 그 정책을 활용해서,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에 10년으로 상환 기간을 연장받았다. 매달, 그래도 갚을 만한 금액을 갚고 있다.


 완전히 최악은 막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매년 상환해야 할 금액이 소액에서 점점 커지게 산정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든 수익을 점점 늘려나가면 되기는 하는 거다. 어찌 보면 성장의 동력일지도?

 내가 운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매달 조금씩 돈을 갚으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아, 내가 이렇게 뭔가 방만하게 운영했구나, 아, 내가 이렇게 조금씩 뭔가 쌓여가는 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구나. 하나씩 쌓아올라가는 보람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빚을 갚으며 그런 것들에 대해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상환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그동안 조금씩 갚으면 못 갚을 돈은 결코 아니다. 갚으려면 갚겠지, 근데 뭔가 이게....빚을 갚으려고 매달 사는 느낌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받는 월급은 한달을 살고 빚을 갚고 나면 딱 간당간당하게 끝나 버리는 것이었다. 뭔가 이번 달에 좀 모였다 싶으면, 다음 주에 훅 나갈 일이 생기곤 하는 것이었다. 월말엔 항상 돈이 부족했다. 월말엔 머릿속이 돈-빚, 돈-빚,으로만 가득 찼다. 그러니까, 삶의 계획이자, 목표이자, 에너지가 ‘빚’이라는 한 글자로 수렴되는 느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마치 손바닥으로 눈 앞을 가리고, 손가락 틈으로 들어오는 미세한 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그래, 1억에 죽을 나는 아니지. 어떻게든 먹고는 살 것이고 엄청나게 가난에 허덕인다거나 빈곤한 느낌까지는 아닐 것 같다. 그렇지만, 뭔가 모르게 10여년을 빚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산다는 것이 뭔가 억울했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지고, 매달 조금이라도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었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가는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로는 수익을 크게 점핑하기란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일 자체도 정말 토나오게 힘들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가장 못하는 영역을 모아놓은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매일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웠고, 만성피로에 시달렸으며, 살도 쪄갔다. 영혼까지 털리는 일이었다.


이렇게 힘들고 돈도 안되는 일, 그만두어야지.그만두고 나의 영혼이 시키는 일, 예술을, 창작을 해야지.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빚쟁이인건 마지막이니 도박을 해 보자. 나의 영혼이 시키는 일이라면 나를 먹여살리겠지.

 


그래 그럼 때려치자.


내가 직장을 그만 뒀을까? 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럼 어떤 선택을 했느냐고? 그냥 직장엘 계속 다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출근을 앞두고 있는 시각이다. 사실 내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은, 내 인생에서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된 패턴이다.  난 뭘 그만두거나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적은 편인 것 같다. 그게 장점인적도 많았지만...진짜 장점인지는 다시 점검해볼 시점이었다. 나한테 어떤 패턴이 반복된다면 그거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거였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들 한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런 때에는 내 생각의 근간, 대전제부터 다시 정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인식의 뿌리부터 바꿔보는 거다.



내 삶에서 나타난 큰 패턴 찾기 

 이런 패턴이 최초로 보였던 것은 십여년쯤 전이었다. 나는 사회초년생때 1년정도 회사를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퇴사하게 된 경험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사회생활이란 것과 너무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자서 작업해도 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마침 당시에는 ‘YOLO’라는 단어가 막 등장하기 시작했던 때였고, ‘나를 억압하는 지겨운 이 사회를 떠나서 나의 자아를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서사가 담긴 책들이 유행했던 때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때의 나는 사실상 나는 오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불안에 시달리고 있어서 일상적인 생활이 어렵기도 했었다. 집 안에서 방 문을 나서는 것도 무서웠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나도 그때의 유행에 편승(?)하여 재취업을 하지 않은 채 작가지망생과 공무원시험 준비생으로 위장해서 방구석 백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글은 지지부진했고 – 아주 소소한 성과들은 있었다. 적어도 내 작품이 뜬 적은 없지만 글과 관련된 직장에서 밥벌이 정도는 계속 해 갈수는 있었다- 내 영혼이 시키는 일을 한다고 해서 나의 불안과 우울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고, 돈이 갑자기 확 벌리지도 않았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직장엘 다시 들어갔고,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나만의 어떤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더 강하게 올라왔었고, 그렇게 한껏 커진 자아는 결국 사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쫓겨나던가, 내가 그만두던가, 하여간에 다시 혼자가 됨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다시 곤궁해졌음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이 짓을 한 5~6년 정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업체를 차렸다가, 다시 그 패턴 안으로 나는 들어가 있다. 같은 상황인 듯 보이나, 예전과는 다른게 하나 있다면, 나는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까 말했던 내 판단의 근간, 대전제부터 바꿨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왜 꿈과 현실 사이의 양자택일만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 뿐만이 그런 것은 아닐 거 같다. 사람들이 많이들 토로하는 고민 중 하나가 ‘꿈이 있는데 현실 때문에 선택을 못하겠어요’ ‘현실이 시궁창인데 이제라도 제 꿈을 찾아가는 게 맞는 걸까요?’이런 종류인데 현재의 내 결론은 ‘내가 오락가락 했던 그 두 개의 답지가 모두 내가 하고 싶어서 펼쳐진 일이다’라는 것이다.


 내 삶에서는 시계추처럼 이쪽과 저쪽을 왔다 갔다 하는 진폭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에 매번 크게 고민이 되었었다. 어쨌거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쪽을 선택할지, 저 쪽을 선택할지- 양쪽의 선택지는 내 삶에 그대로 펼쳐졌고, 그 오락가락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기에 나는 거기서 어떤 패턴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상의 흐름과 법칙에 맞추어 사는 것과 나만의 흐름대로, 고유한 영역을 지키며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사는 것 사이의 진폭이었다. 전자는 내가 가장 취약하며, 피하고 싶고, 두려워 하는 일이었으며, 후자는, 원래부터 잘 했고 가장 편안한 영역이었다. 그러니까, 좀 더 정리해 보면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일             VS          내가 가장 잘 하고 재능이 있는 일


회사생활                                                 조용히 방구석에서 놀기       

사람들의 통념에 완전히 들어가기                세상에 반감(좋게 말하면 새로운 시선)갖기

실질적인 3차원의 삶                                 통찰과 성찰,(영적인 탐구의 삶)  



사이에서 오락가락 했던 것 같다. 매번 어느 한 쪽의 선택을 했었고, 오락가락의 진폭을 최대치로 찍은 후 부터는 그 진폭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삶을 살고자 노력해왔다. 결국 삶의 진폭이 커 봤자 피곤하고 힘든건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내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서 내 삶의 진동폭을 줄일수 있었던 방법이 뭘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그 안에서 행복하면서도, 다만 그 안에 완전히 매몰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만의 지향점을 갖고,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가며, 그것을 표현하면서도, 세상에 완전히 매몰되지는 않으나, 또 세상과 조화롭게, 세상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사실 모든 창작자들이나 예술가나 창업가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예술가나 창업가들이나 사업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이나 지향점을 갖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방구석 예술가로만 남거나, 창업가의 아이템이 누구에게도 이로움을 주지 못하고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한다면, 곤궁함 역시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

 이런 방향성으로 계속 나아가다보니, 내가 선택하게 된 것들은 ‘죽도록 도망치고 싶고 무섭고 두려워 하는 것’을 마주하고, 마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자유로움을 얻는 것이었다. 사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일’을 마주하는데 더 골몰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는게 무엇이었는지는 삶에 이미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과 싫든 좋든 일정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아니라 싫든 좋든 일정한 시간, 일정한 분량의 일을 해내는 것, 도파민 쏟아지는 재미가 없어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영혼이 쥐어짜이는’느낌이 들더라도 그것을 그냥 우직하게 계속 주어진 해 보는 것, 사람들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보는 것, 누군가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 수다를 떨어보는 것, 생각하고 생각하고 곱씹고 말을 뱉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함으로서 그동안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지나치게 비대해져버린 나의 자아를 세상과 조화시켜 보는 것........셀 수 없이 많다.


 내가 두려워한 대부분의 영역은 말 그대로, ‘지독하게 하기 싫어서 일평생 도망만 쳐 온 영역’ 이 많았다. 두려움은 정말로, 말 그대로 목젖까지 칼을 들이대는 것 같은 두려움인 경우들이 많아서 때로는 이것이 바로 자학이 아닌가, 자기 부정에 가깝지 않는가, 란 생각이 들었던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던 그 일은 내게 부족한 근성을 길러주었다. 지구력도 길러 주었다.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글의 포인트도 알게 되었다. 혼자서 글만 쓸 때는 오랜 세월 아무리 글을 써도 죽어도 갖기 힘들던 대중성을 획득한 셈이다.  


 내가 그토록 두려움을 강하게 가졌던 부분이 있고, 그것이 내 삶에서 반복적으로 내 삶에 나타났다면, 그것은 그만큼 내가 그 부분을 넘어서기를 나 자신이, 나의 영혼과 자아가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강력하게 원했던 것은 이유가 있던게 아닐까?


 나는 이제 내게 길러진 근성으로, 한 호흡에 더 긴 글을 더 오래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글, 재미있어 하는 부분을 예전보다 잘 알기 때문에 필살의 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노심초사 하는 노력과 시간도 그만큼 줄었다. 살 떨리게 두렵던 노트북 앞에서의 시간들이, 이제는 내 일상 중 가장 나의 영혼과 합일되어 몰입하는, 가슴 벅차게 행복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제 나는 나의 생각을 손이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글로 표현하는 행위에 있어서 많은 자유로움을 얻었으며, 그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으로 다시금 자리잡았다.


 예술가와 사회생활은 반대옵션이 아니었다.내가 그토록 도망쳤던 일, 하기 싫었던 사회생활은 역설적으로, 사실 내가 가장 원하는 일,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사회에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나는 돈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는 내 꿈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는다. 내가 계속해서 도망쳤던 것들에 대해서, 이를 악물고 마주했을 때, 내 삶은 좀더 속박이 덜한 자유로움으로 갈 수 있었다. 결국 삶은 양자택일의 문제라기 보다는, 모자란 요소를 보완해가고, 원래 내가 갖고 있는 능력치와 잘 융합해갈 때 보다 그 다음으로의 수월한 진전이 있지 않나 싶다.


 결국 내 삶에 펼쳐진 모든 것들은 내가 원했던 것들이 맞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것들은 내가 약한 지점이 뭔지, 두려워 하는 지점이 뭔지, 그럼 진짜로 하고 싶고 원하는 삶이 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역설적으로, 때론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사람이나 상황들이 현재는 가장 크고 깊은 감사함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 상황들을 마주했기에, 나는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앞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의 하나는, 바로 ‘영혼과 나 자신이 합일되어 나아가는 ’그 느낌이었다. 그것은 때로 처참한 실패로 느껴지기도, 또 실제로 실패했기도, 또 많은 좌절을 맛보게 하기도 했으나 나 자신이 영혼과 합일되어 완전히 나 자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 그 하나가 이 모든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게 주었다. 내가 원래 잘 하는 것, 때론 정말 하기 싫고 두려운 것들에 마주하기도 했으나 그 또한 내 영혼과 합일된 완연한 행복의 시간이었고, 막연한 안개 속 같은 삶에서 나 자신으로 우뚝 서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죽도록 싫던 일이 더이상 싫지 않아졌을 때,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죽도록 싫어하던 일이 더 이상 싫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좋아지게 되었다.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냈으며, 내가 죽도록 못 해내던 일들을 나는 아주 순조로이 잘 해내고 있어서 평판도 좋았다. '내가 이 사람들과, 이 일을 하고 있어서 힘들지만 행복하다, 뿌듯하다'느낀 그 무렵, 내게는 번아웃이 찾아왔다. 사실 번아웃이라기 보다는 영혼적인 신호에 가깝다. '이제 진짜 정말 원하는 것을 향해 가야 한다'하는 신호 말이다. 


 사실 내가 싫어하던 일들은, 내가 더 도약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였지 그 일 자체가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기는 했다. 무던히도 넘기 어려운 산을 나는 넘은 것이다. 해당 부분에서, 나는 드디어 자유를 얻은 것이다. 

치만 매달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과, 루틴화되어 익숙해진 일들, 익숙해진 사람들이 나를 이 자리에 머물고 싶게 했다. 다른 무엇보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의 영혼은 이 자리에 머무르기 원하지 않았나보다. 일터에서 뭔가 용을 써보려고 할 때마다 호흡이 꼬이고 제 컨디션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좀 헷갈리는 지점이 있었기도 했다. 영혼적 신호로서 몸에 힘듦이 온다고 해도, 사실 오히려 그것마저 이겨내야 그 다음스텝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지표들로 나름의 판단과정을 거쳐, 나는 이 글을 마무리짓고 있다. 


새 시작에 앞서 나는 현재의 에너지를 정리중이다. 며칠간, 아주 오랜기간 나를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던 오래고 낡은 감정들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올라오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이제야말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회복하고 나의 길을 밀고 나아가보고 싶다. 좀더 나의 영혼과 합일 된 삶, 내가 자유로움을 획득한 부분을 펼쳐보이는 삶을 살고 싶고 그렇게 살 것이라 선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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