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여자가 들려주는 둘의 영혼적인 삶과 전생의 이야기
그와의 만남이나 이별이 다른 이와의 이별과 특별히 다른 점도 없었다. 오히려, 이번생에서 나에게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그보다 더 특별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다른 사람들도 많다. 마치 드라마에서 사랑을 만나면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고 말하는 ,그런 낭만적이고 특별하고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오히려, 나의 쌍둥이 불꽃과는 이상하리만치 별 사건이 없었고,우리의 짧은 만남은, 이별 그 자체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별’이라는 두 글자가 너무도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와의 짧은 만남 후 몇 년이 지난 후 까지도 간헐적으로 그 울림은 이어졌다. 나는 그게 신호 같았다. 뭔가 모를, 놓치면 안 될 신호. 왜 계속 떠오를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가. 왜 이렇게 후회스러울까.
이상하게도, 그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내 마음속 그 이유 모를 근원적인 외로움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이유 모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다. 채 석달도 만나지 않은 남자에게 이런 특별한 감정을 갖는 나를 누가 이해할까. 나도 내가 이해가 안가는데.
알 수 없는 의문을 나 역시도 품은 채, 나는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 그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그는 연락에 답을 해주었다. 가슴에, 내 마음의 근원부터 사랑으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는 이 만성적인,나를 괴롭히는 이 상실감에서 벗어나는가. 드디어.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 줄, 나를 이해하고, 내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모든 감각기관이 연결된 ,나 자체같은 나의 사람, 아니 나의 사랑. 그를 이제 드디어 만나게 되는 것인가. 나는 환희에 들떴다.
그러나 그는, 나의 연락에 답을 해 주기는 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더욱 애가 닳았고,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만큼의 상실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가 만남을 가질 때부터 이어져 온 한 가지 느낌이 있었다.
‘이 사람이랑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 물론 나는 대부분의 이에게 그런 감정을 갖긴 했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런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물론 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기도 했다. 그는 도무지 곁을 주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그 어떤 여자도 그 철벽을 뚫어내기란 어려웠을 것 같다. 극도로 말수가 적었던 그의 굳게 다문 입 속에, 대체 그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삼키고 있었던 걸까.
우리는 태초에 헤어진 이후에도, 지구에서 몇 번 조우하기는 하였다. 내가 기억해낸 것만 몇 번은 되니까. 시기도 나라도 다양하다. 희한하게도,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은 매번 비슷하였다. 우리는, 짧은 시간동안 감정을 나누었는데, 그 감정의 교류도 서로 호감을 확인하는 수준이었을 뿐, 어떤 의미 있는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어떤 생에서는 내가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되어 몰래 연정을 품었던 적도 있었고....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어버린 생이 있다. 어쨌거나 평행선 같은 느낌이었다.
평행선. 그것은 영원히 닿지 않는 선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이제야 다시 만난 내 짝과, 어떻게든 잘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에게 꾸준히 연락했다. 헤어질 당시의 내 과오에 대해서 반성과 사과를 전했다.
그래봤자 그는 채 세 마디를 더 이어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평행선이었고 더 해봤자...이건 그냥 혼자 미친년 널뛰기밖에 더 되겠는가. 이렇게 애가 닳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번도 그를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것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쯤 되었을 때, 나는 우리에게는 뭔가 다른 길이 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우리 둘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서는 도통 장애인들이었다는 것이고, 근원적인,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독감과 더불어 삶이 안개 속을 헤메이는 듯한 느낌에 휩싸여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그럴수록 더더욱 입을 굳게 닫았고, 나는 그럴수록 내 감정과 감각을 추적하며,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들을 계속해서 찾아갔다는 점이다. 그것이 설령 인간적인 감각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인 듯 보임에도 말이다. 도대체가 전생을 실제로 현재의 내 삶과 연결지어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혼적으로 하나였다는 것에 대체 무슨 증거가 있는가? 심지어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영적인 세계를 운운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기까지 하는 인간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떠올린 것들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것이 내 환상이 아닐까 하고 의심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들은 현재 내 삶의 궤적-관계에 잼병인 점, -이별만을 자꾸 창조하는 것-그리고 목표점과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어렴풋이나마 들었고, 나는 그것들을 한번 따라가보기로 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그것 이외에,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근원적인 고통과 불안을 병원에서는 불안장애로 진단하였다. 오랜 심리치료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종교에 기대보기에는 그들의 논리는 인간의 다양성을 포용하기에는 너무 협소했다. 도통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니 그 논리 하에서 나는 철저히 이해받기 어려운 인간이 아니던가. 어차피 인생 자기 느낌대로 가는거다. 철저히, 나는 내 감과 내 느낌을 믿고 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 스텝은 어떻게 가야 할까. 우리의 다음 스텝이, 마치 드라마처럼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 서로의 결핍감을 채우며 함께 살아가다 죽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를 그리워했으며,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 했던 시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인간적인 시간으로는 대체 얼마나의 시간일까. 무의식에 잠겨져 있던 그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에 쓰러질 것 같았으면서도 계속되는 그의 장벽에 나는 절망했다. 그렇지만 답이 나올 때까지 다르게 생각해 볼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