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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May 26. 2021

에르미타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미술관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주(Hermitage)는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곳이다.

본관인 겨울궁전을 위시한 6개의 궁전과 3개의 부속건물로 이뤄졌고, 350만 점에 달하는 소장품은 고대 아시아로부터 근대 유럽, 현대 러시아를 아우른다. 한 점당 5분씩만 감상해도 30년이 걸리고, 전시로를 한 줄로 이으면 27km에 달한다.

소장품으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피카소, 고갱, 고흐, 로뎅, 세잔, 모네, 마네, 르느와르, 램브란트, 다빈치, 칸딘스키의 진본들이 포함되고, 그 외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도 헤아리기 어려운 수준이다.

러시아에 가고 싶던 가장 큰 이유인데, 정작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넷째 날 방문하게 되었다. 아껴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틀 간의 미술관 관람 후 카렐리야공화국 행 야간열차를 탈 계획이었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2020년 9월부터 티켓 판매 정책이 무척 복잡해졌다.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관람객 통제를 위한 것 같은데,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할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1일권과 2일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격은 하루에 만원 정도, 현장에서 학생증 제시 후 구매하면 반 쯤 깎아줬다. (현장구매는 대기열이 너무 길어서 권장할 방법은 아니지만) 러시아 소재 학교는 물론이고,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학교들과 일부 외국 학교의 재학생도 해당된다고 하니 해당자라면 리스트를 찾아보면 좋겠다.

내 경우는 한국에서 2일권을 구매했고, 메일로 받은 바우처를 에르미타주 입구에서 티켓과 촬영허가 스티커로 교환했다. 파란색은 1일 촬영권이고, 2일 내내 촬영하려면 추가로 빨간색 스티커를 구매해야했다. (뭔 일 있겠나 싶어서 구입하지는 않았다.)

한글 팜플렛과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반가웠는데, 자세히 보니 대한항공에서 후원해 만든 것이었다. 녹음은 김성주씨와 손숙씨였는데, 톤도 속도도 듣기 좋았다. 

가이드북도 챙겼겠다, 관람 준비를 마치고 화려한 계단을 따라 겨울궁전으로 들어섰다.

책에서나 보던 작품들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들여다보며 열심히 걸었지만, 꼬박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루벤스의 전시실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왠만한 작가들은 자기 전시실을 하나씩 갖고 있고, 전시실 하나에는 수십 점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루벤스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한 시간 넘게 전시실에 머물며 그림 하나 하나를 눈에 넣기 위해 애썼다.

이어지는 플랑드르 작가들의 전시실들을 지나니 램브란트의 전시실이었다. 그야말로 램브란트다보니, 전시실의 규모도 훨씬 크고 작품수도 더 많았다.

넋이 나가서 한 점 한 점에 마음을 뺏기다가, 노인의 초상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던 걸까. 눈이 뻘개지도록 울고 있는데, 관람객들이 조용히 지나쳐갔다.

타인의 눈물을 존중해주는 것이겠지.

다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에는 셔터를 열심히 눌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고, 눈으로, 마음으로 기억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르미타주의 간접체험은 이곳에서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루벤스의 그림들을 한번 더 보러 갔다. 그 붉은색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미술관에 머문 시간은 이틀 꼬박이지만, 적지 않은 전시실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5분씩만 봐도 30년이라는 말이 실감이 됐다. 그리고, 한달 쯤 머무르며 매일 그림을 보러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흐려지는 하늘을 보며 에르미타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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