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13년 전의 나는 치매에 대해선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미국생활 7년을 정리하고 귀국하면서 내 자존감은 하늘을 뚫고 있었고,
어디든, 이력서를 넣으면 무조건 내가 원하는 포지션에 입사할 수 있을 거라
자부했었다.
이미 귀국 전 S병원 교육팀장 자리에 지원을 하고 인사팀장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던 상태였지만, 결혼하면서 바로 미국행이었던 터라 귀국하면서 당장 지낼
집이 없어 한동안 시댁, 친정으로 떠돌이 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어렵게 전전세를 구해 S병원에 연락을 했으나 내가 연락이
되지 않아 이미 다른 사람으로 채용 완료 되었단 답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타격감은 0였던 터라, 곧이어 E대학병원, C대학병원에 컨택을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교육간호사나 팀장급 자리가 아닌 모두 일반 병동 3교대 간호사만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종합병원들도 마찬가지로 3교대 가능자가 필요하고,
미국에서 간호사면허를 따고 방문간호를 했던 그 시간들 조차, 경력 단절로 치부되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3교대는 불가능했던 나는 상근직 근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당시 상근직 간호사를 채용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한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병원, 간판을 보니 노인전문병원이라고 되어 있던 이곳을
주말 오후 어느 날 그렇게 무작정 찾아갔다.
그저 어떤 곳인지 분위기나 보자 하는 마음에 들어간 로비, 부부로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소파에 앉아 계셨다.
보호자냐 묻는 내게 나는 " 아니요, 화장실이 급해서요~ "라고 핑계대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다 마주친 또 다른 어르신, 보행보조기를 한 손에 쥔 채 손을 씻으려던 차에
마주친 나 때문인지 뒤돌아보시려다 비틀거리셔서 내가 잡아 드렸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신다. 그 소리에 간병사가 뛰어 들어와서 어르신을 모시고 나가다 말고 뒤돌아 서선
" 놀래셨죠 이 냥반 치매라 그래요" 하곤 급하게 어르신 뒤를 쫓아 나갔다.
그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뒤 난 이 병원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때 나랑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 어르신은 정확히 한 달 뒤에 날 당신의 양딸로
삼으셨다.